어제 보니 노인의 하얀 플라스틱 의자가 사라졌다.
한데에 오래 있다보니 삭아 다리라도 한 짝이 망가졌는지,
시절없이 나와 앉아 있는 노인이 부끄러워 가족들이 치워버렸는지.
사방 두 어뼘 정도의 빈 공간이 꽤나 휑하다고 느껴졌다.
오늘 보니 꽃이 진 벚나무 의자 있던 자리에 노인이 서있다.
꽃진 자리만 시커먼, 새잎이 돋지 않은 벚나무가 빈나무보다 더 을씨년스러운데
계절 분간이 흐릿한 노인의 복장이 오늘은 한겨울이다.
가드레일을 붙들고 서 있는 노인은 야위어 중력이 단단히 받쳐줄 필요도 없는 듯 하고,
그냥 그렇게 봄을 서있다가 봄과 함께 그냥 사라진 의자처럼 사라지지는 않을런지.
그 많은 날들, 한 마디 음성을 들어본 적도 없다보니,
사실은 그가 그냥 육신을 버리지 못한 유령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많은 날들을 홀로 앉아 우두커니로 침묵할 수가 있는가 말이다.
아니라도 그리 길게 그곳을 지키지는 않을 것 같다.
의자도 없이 앙상하게 서 있는 모습은 차마 보기가 힘이 든다.
이미 오래도록 심연에 영혼이 들어앉아 있다면, 훌훌 멀리 날아 오르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그의 등을 살며시 밀어보고 싶어진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활이 나를 너무 속입니다(13.5.8) (0) | 2013.05.08 |
---|---|
꽃 피는 산골, 청양(13.04.21) (0) | 2013.04.26 |
삶에 경중이 없다(13.03.20) (0) | 2013.03.20 |
서릿발 성성하고 안개 자욱한 아침(13.03.15) (0) | 2013.03.19 |
봄이 눈을 뜨다(13.03.14) (0) | 2013.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