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학교 주변를 몇 번 빙빙 돌아보는데 꽃이 없었다.
올해는 남쪽의 꽃소식도 유난히 이른데 말이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맘 때쯤이면 꽃다지나 냉이꽃, 혹은 푸른 빛의, 별처럼 예쁘지만 너무 작아 찬찬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존재도
알수없는 미미한 꽃들이 피어 있을 줄 알았다. 하여 앞뜰 뒷뜰로 현미경같은 눈을 하고 들여다보았지만 어디에도 꽃은 없었다.
제일 이른 봄꽃인줄 알았던 앞뜰의 수선화도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저혼자 들뜨다 시무룩하던 차에 누가 그랬다. 할미꽃이 터지고 있다고.
동편 화단의 소담하던 몇포기 할미꽃은 동네 할미들이 약한다고 다 캐갔는지 흔적도 없는데,
어떻게 속여 넘겼는지 목숨을 부지한 사진처럼 제법 번 한포기, 그리고 새로이 뿌리를 잡은 작은 포기들이 마침내 문을 열고 있었다.
할미꽃은 개화기간이 덧없이 짧다. 학교에 지금 저 홀로 꽃을 피워, 처연한 꽃이지만 대견하고 빛이 난다.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알린 전령 못지 않게 장하다고, 나는 할미꽃에게 짐짓 과장된 칭찬을 해주고는 그럴싸 하다고 생각한다.
긴 겨울을 견뎌 마침내 봄이라고, 봄이 숨가쁘게 간절했을 누군가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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