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새봄, 길가의 노인(13.03.09)

heath1202 2013. 3. 9. 12:23

겨우 내내 그 노인을 볼 기회는 없었지만 삭아가는 하얀 플라스틱 의자는 변함없이 길가 제자리에 있었다.

어제 퇴근 길에 그 노인을 보았다.

의자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려는 참인 모양이었다.

오늘은 몇 시간 쯤 의자를 지켰을까.  이렇게 따뜻한 새봄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노인의 발걸음이 허청인다.  겨울 전에 비해 턱없이 쇠약해졌다.

마치 허공을 딛듯 한걸음 한걸음 디딜 때마다 다리가 허공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얼마나 더 저 의자를 지킬까 생각하다가 내가 일부러 그의 목숨을 카운트 다운하고 있는 듯 싶어 섬뜻해진다.

아무런 개인적인 감정의 부대낌이 있을리 없고 다만 습관처럼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를 통해 생명을 노쇠과정을 관찰하고 있을 뿐인데

그 또한 집요하다보니 가끔 그의 내일에 대해 지나친 추측이나 기대을 하곤 하는 것이다.

나도 그에게서 자유롭고 싶다.

노쇠와 흐린 정신과 추함이 그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의자 위의 그를 나로 치환하는 착란이라도 올까봐  공포스러울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마음의 집중 또한 경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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