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담담이 맞고 싶은 폭설(12.12.07-09)

heath1202 2012. 12. 10. 00:38

눈의 급습이다.  설마 이렇게 오전부터 쏟아 부으리라곤 예상도 못했는데, 2교시부터 퍼붓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다.

멀리 서해안 선생님부터 부랴부랴 조퇴를 하였고 곧 수업은 휴강에 들어갔다.

앞날에 대한 희망보다는 늘 불안을 안고 사는 시대인데 

올겨울 들어 부쩍 비도  잦고 기온도 심심치 않게 곤두박질 치며

대낮에도 어둑한 회색빛 하늘이 일상이 되어 사람 마음을 한없이 우울하게 하더니만 기어코 이렇게 맹폭에 들어간 것이다.

모양만 한없이 날렵한 나의 낡은 투스카니는 속절없이 미끈둥거리며 20여 킬로 미터 남짓을 가는데 한 시간이 족히 걸렸다.

사는 일에 자신감을 뚝뚝 꺾는 일이 사위를 에워싸고 있는 기분이다.

 

이제 가야하나... 창밖으로 내다본 세상이다. 부지불식간에 눈이 몇 센티가 쌓여 있었다.

 

BMW도 미끄러지는데는 속절없다.  이런 때는 그저 안 미끌어지는 차가 갑이다. 

발 묶인 BMW옆을 국산차가  보란듯이 의기양양하게 지나쳐 간다.

 

무채색의 풍경속에 무지개빛 우산이 참 이쁘구나. 

 

눈 쌓여가는 풍경.  이쁘긴 하다. 내 차가 눈을 젤 많이 뒤집어썼네.

 

차 한대도 마주치지 않은 논산-부여간 구도로.

 

4차선 도로가 차 한대 없이 마치 설원처럼 시원하다. 

제설을 하지 않았대서 탓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세상 사는데 이렇게 속수무책인 일이 한두번이던가.

 

 

 집에 도착하니 긴장하고 운전한 탓에 삭신이 아프다. 배롱나무 굵은 가지에 간결히 쌓인 눈.

 

우리집으로 가는 골목. 십오센치는 족히 쌓인 눈에 발목까지 빠져가며 처음 발자국을 낸다.

 

 

화단의 나무가 눈을 이기지 못하고 자빠져 있다.  짐이 너무 무겁구나.

 

내내 집에 처박혀 있던 꼬맹이가 아줌마가 온 걸 보고 비로소 기어나와 발자국을 찍는다.

 

눈에 한 가닥 길이라도 내야 될 것 같아 부삽을 들고 나서보니 한 줄기 비틀거리는 내 발자국.

 

문명의 세상에서 눈은 곧 제거될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사르락 거리는 눈 소리를 느끼며 며칠 쯤 세상과 고립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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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hannel에서 "인도의 얼굴"을 했다. 

'잠무-카슈미르' 편이다.  내가 머물렀던 스리나가르도 지나쳐갔던 소나마르그도 나온다.

인도-파키스탄간의 분쟁지역으로 테러와 군사충돌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는데

안전불감증의 우리는 돌이켜보면 참 속편하게 그곳을 찾았었다.

어쩌면 보통 사람들의 삶은 어쨌든 그렇게 계속 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곳에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렌즈를 들이댄 그곳의 삶은 내가 생각한 훨씬 이상으로 힘들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아름다운 카슈미르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 뿐인데 보니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꿈인 모양이다.

어머니와 누이가 만든 수공예품을 들고 뉴델리의 거리를 헤매고 있는 카슈미르의 청년을 보며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SBS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의 아누트 젊은이는 망망대해에서 쪽배를 타고 지도에도 없는 아누트 섬을 찾아간다.

별을 보고 간다고 한다.

별이 없을 때는 파도를 따라 가라고 한다.  바닷물에 손을 담가 파도를 읽으라고.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 헤픈 눈물.

별도 읽을 줄 모르고 파도도 읽을 줄 모르는 우리는 어떻게 정처를 찾아가야 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