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밤 SBS에서 방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Last Capitalism)"을 3주째 열심히 챙겨보고 있다.
돈의 노예로 탐욕과 이기심과 무한 경쟁속에서 살아가는 자본주의 세계의 우울한 군상들에 대비하여
우리 세상과는 너무도 판이하여 그야 말로 꿈이려니 싶기도 한 판타지 같은 세상이 제시된다.
적잖이 감성에 치우치고 단순화된 측면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두 세상의 대비가 극명하기도 하다.
막바지까지 가고 나면 어쩌면 우리는 어처구니 없다 싶었던 것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기도 한다.
어제는 상하이와 함께 그것의 대립항으로 북인도 라다크 지역의 한 마을이 소개되었다.
중매시장에 자신을 팔려고 내놓는 상하이의 처녀와 엽서에서처럼 온통 꽃으로 치장한, 결혼에 재산은 중요치 않다는 라다크의 처녀.
전자는 당연히 암울했고 후자는 보는 내가 간지럽도록 아름다웠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퍼뜩 엽서가 떠올라 찾아보니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된 마을의 여성의 치장과 거의 일치한다.
아래 엽서는 라다크의 레에서 산 것이다.
어느 유기농 가게에 갔다가 정전이 되어 희미한 촛불 아래 얼마를 기다리다가 살구쨈과 함께 엽서 몇 장을 샀던 것이다.
물론 다큐멘터리 속의 파키스탄 가까운 마을은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TV를 보면서 그와 너무도 흡사한, 나무 한그루 자라지 않는 황막한 산 아래, 거짓말처럼 살구나무와 미류나무가 지천인,
어느 골짜기 마을이 떠오르고 나는 라다크가 한없이 그리워졌다.
높은 고도와 길고 험한 도로 사정, 부족한 문명의 이기들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돌이켜보건대, 나의 가장 그리운 곳은 지금 라다크다.
라다크에 다녀온 후로 나의 꿈이 하나 또 생겼다.
퇴직하고 나면 길게 레에 머물러 보자고. 오래 머물면 경치뿐 아니라 사람도 보게 되게 될테지.
어쩌면 눈이 오는 계절, 아니면 살구꽃이 만발한 계절에.
그러다가 훈자까지 주욱 가게 될지도 모르고, TV속의 처자도 혹시 보게 되려나. 그땐 아이도 몇 있겠다.
홀로 있는 게 이리도 즐거운 나는 진짜로 어울려 사는 사람들을 꼭 봐야 할 거다.
눈 내린 라다크는 많이 추울까? 육로가 끊긴 레에서 오래도록 머물러도 좋겠다.
공부하는 게 싫은 건 아닌데 할일이 너무 많다.
밥하고 살림하는 것을 면제받았는데도 시간이 너무 없다.
별로 한 것도 없이, 미처 책은 읽지도 못했는데 두시가 넘어간다.
할 수 없이 잘 준비를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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