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공주 메가박스에서 "위험한 관계"를 보고 돌아오던 참.
내가 본 허진호 감독의 영화를 생각해보니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외출", "호우시절",
그리고 오늘 본 "위험한 관계" 까지 모두 다섯 편이다.
나에겐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가 가장 감명 깊고 여운이 길었던 영화로 남아 있다.
갈수록 스케일이 커지는 반면 왜 처음만큼의 가슴 저린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걸까.
당연히 허진호 감독은 늘 기본 훨씬 이상은 된다. (기본이라 함은 돈 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
하지만 허진호 감독이어서 더욱 서운함이 드는 건 나뿐일까.
허 감독의 초창기 영화에서 발견했던 그만의 독보적인 색깔이 그립다.
사랑에 대한 따뜻함, 쓸쓸함, 그리고 남겨둔 여운...
"위험한 관계"는 제 자신을 직시하는 게 두려운 듯 싶은 한 사내(장동건)가 사랑을 희롱하다
어처구니 없는 죽음 앞에서 비로소 제 마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결국 플롯은 조금 복잡해졌지만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너무 쉽게쉽게 넘어가서
이야기 사이의 긴밀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랑은 결국 직구다" 라는 내 생각을 다시금 확인했다.
돌아오는 길에 인적도 별로 없는 금강가에 조성된 코스모스 들판을 잠깐 내려가 보았다.
코스모스인가 싶게 무릎 정도 닿을 만큼 키가 작았는데, 참으로 색이 고와 살면서 본 중에 가장 예뻤다고 단언한다.
조금씩 어둠의 기미가 내려앉는 강가에서 기분이 좋아 십분 정도 정신없이 종알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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