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를 향해 정신없이 돌진해서는 찍고 돌아오곤 하다가 이 삼주 별 계획없이 지내봅니다.
오늘, 어슬렁어슬렁 기웃대는 것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이 맛있어질 때까지 굶고 있다가 늦은 끼니를 때우고, 궁남지를 산책하고, 버드나무 그늘에 서서 쏴하니 부서지는 분수를 새삼스럽게 지켜보고
유월의 햇살에 피부가 염려스러울 때 쯤 슬슬 퇴각해 작은 찻집에 앉아 중력에 온 몸을 맡기고 가늘게 눈을 뜹니다.
허름한 거리의 낡은 건물들이 보이고, 나와 그 거리의 사이에 비현실적으로 예쁜 화분들이 나란이 놓여 있습니다.
아마 잠시라도 제대로의 평화를 누리려면 바깥 세상이 꽃의 프리즘을 통해 순치되어야 할 모양입니다.
피난처에 앉아 화분너머로 본 저 쪽 세상은 소리가 소거된 느린 무성영화 같습니다.
소리가 없으면 한층 평화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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