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행복하게 눈물 흘린 날(12.05.31)

heath1202 2012. 6. 1. 16:52

아이들 수학여행으로 뜻하지 않은 휴가를 보냈다.

하루는 정말 게으름의 밑바닥까지 가보자고, 그야말로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고 보내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부싯부싯 세수하고 운동하러 나섰고

둘쨋날은 학교 지키러 가는 날로 몇 가지 일은 기필코 하고 말리라 별렀지만

컴퓨터 가지고 조금 노닥거리다 보니  하루가 허무하게 가버렸고

셋째날은 더 이상 뭉개다가는 무기력함에 위험한 짓이라도 저지를 것 같은 기분이어서

슬금슬금 다니며 할 일을 찾아 보았다.

내게 있어 치사량의 권태가 얼마 되지 않는 걸 알고 나니

미친 녀자처럼 일없어도 거리라도 쏘다녀야 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엄선해 보기로 하였다.

보면 마음이 평화로와지는 여행 프로그램이나 담담한 다큐멘타리 같은 것.

홈쇼핑은 멍청이 된 기분이 들게 한다던가, 일을 저지르게 하므로 금물.

 

어제는 펑펑 눈물로 나를 정화한 날이다.

두 편의 ebs 다큐멘터리 "학교 300일간의 기록" 때문이다.

오전에 본 것은 "지리산 고등학교 편", 밤에 본 것은"조현 초등학교 편".

나를 울게 한 것은 특히 지리산 고등학교 학생들이 꿈을 이야기 할 때.

교사가 되고 싶고, 한의사가 되겠다는 아이들의 꿈이 한결같이 나눔을 지향하고 있음을 발견했을 때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그래, 너희들이 희망이다."

각박하고 숨 막히는 무한 경쟁의 아수라장인 이나라,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서

저렇게 순수하고 따뜻한 꿈이 자라고 있다니.

교사의 일이 갈수록 버거워서 내 아이만은 절대 교사를 시키지 않리라 막무가내로 큰 아이의 희망을 반대했고

여지를 두고자 교대가 아닌 사대로 보냈으며 아이가 임용고사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리산 고등학교 아이들이 나를 많이 부끄럽게 한다.

물론 지리산 고등학교가 평균적인 우리나라 실정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현실을 탓할 때 이미 나는 변명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늘 비겁해서 현실이 이 지경이 되도록 책임을 방기했다.

누구를 탓하기만 할 것인가.

깨달았다.

아이들이 힘든 것이 내탓이다.  우리 교사들의 탓이다.  어른들의 탓이다.

 

내가 떠나갈 때 조현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처럼 아이들의 눈물로 배웅 받을 수 있을까.

 

 

300일을 꼼꼼히 기록해낸 EBS의 노고에도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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