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집 재정 시스템이 있다.
우리는 결혼해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봉급을 합쳐 본 적이 없다.
함께 재테크를 고민해 본 적도 없다.
어찌해서 그리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원인은 나에게 있을 것이다.
결혼 할 때부터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해본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거의 모든 걸 내 중심으로 맞춰 주는 남편은 슬금슬금 내 식대로 따라 온 걸 테고 그렇게 고착이 된 것일 것이다.
그래서 결혼해서 함께 살게 되었지만 봉급은 각기 알아서 관리해 왔다.
어느 정도 합리적이라 합의된 선에서 지출을 배분하고, 그담부턴 저축을 하는지 빚을 내는지 절대 궁금해 하지 않는다.(적어도 나는)
나는 20여년 동안 단 한번도 남편의 지갑, 휴대전화, 그리고 통장을 열어 본 적이 없다.
이것들에 대해 나는 관심도 없고 관심 있어도 안되는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남편에게 내 것도 그래야 하는 거고.
사람들은 저래도 부부인가 할 런지도 모르겠다. 너무 살벌해? 삭막해?
글쎄, 이렇게 안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글을 쓸 때까지 나는 우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특별히 문제를 느껴 본 적도 없다.
지출이 어떤 식으로 배분되는지 보자면, 나들이 나가면 영화비는 남편, 찻값은 내가 낸다.
큰애 생활비는 남편이, 작은애 생활비는 내가 낸다.(큰애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국립대생이라 학비도 싸고 장학금도 있고 과외도 해서 부담이 아주 적지만 작은 애는 사립대생으로 예체능계에 요즘은 의상공부까지 시작해서 큰애에 비해 돈이 엄청 드는데 공부도 별로라 과외도 못하고... 불공평하기가 이루 말 할수 없지만 암말 안한다. 나의 경제 독립이 흔들릴까봐.)
시댁 드는 돈은 남편이, 친정 드는 돈은 내가 쓴다.
"요즘 일도 안하시는데 어머니 용돈 좀 더 드리지." 내가 너그럽게 말한다. (내 돈이 아니니까. ㅋㅋ)
여행을 가면 비행기표는 남편이 사고 경비 중 일부를 내가 부담한다.
우리집 가구나 가전제품은 다 내 돈으로 샀다. 집 고치는 건 남편 돈으로 했다.
이런 식으로 지출 부담을 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헤프니까 잡다한 비용이 나에게서 지출이 되고, 대신 큰 몫은 남편이 지출한다.
통계를 보니 우리 같은 재정 시스템은 거의 없는 것 같고, 전문가들도 부부가 머리를 맞대야 돈을 모은다고 충고한다.
우리도 그랬다면 부자가 되었을까?
내 경제 사정을 보니 조금 한심하긴 하다.
플러스 마이너스 해 보니 남는 게 거의 없다. ㅉㅉ
하지만 부족한대로 이제껏 경제 자유를 누리며 살아왔는데 새삼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자유를 반납하리.
그리고 돈을 모으지 못한 대신에 소질도 없는 재테크 하느라고 골머리 썩히진 않았지 않은가?
또한 이제껏 별탈없이 살아왔다는 것은, (아전인수겠지만) 이것이 최적이라는 반증이 될 수도 있는게 아니겠는가?
남편의 경제사정은 조금 나을래나? 그러길 빈다. 나중에 혹시 빌붙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땐 설마 지금처럼 알아서 살라고 하지는 않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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