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이게 행복?

heath1202 2011. 12. 2. 13:24

늘 끄적이는 단상이 우울하기 이를 데 없는데, 즐거운 일을 하소연 하지는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사람이란, 적어도 나란 사람은  즐거운 일은 대체로 과소평가하고 힘든 일은 침소봉대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리 우울해서야 어떻게 살 것이며 막말로 그리 살아 무엇하랴.  말하자면 나에게도 즐거운 일이 꽤 있다는 얘기다.

오늘은 어떻게 살았나.  우리 애들하고 있는 시간은 늘 웃는 시간이었고,   교무실에선 늘 그렇고 그래서 헤드폰으로 귀 틀어막고 업무 처리하고 교재 준비하고 학기말고사 시험문제 뽑고 사이사이 뉴스도 잠깐 들여다보고 그리고 휙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으면 블로그에 끄적여 임시저장해놓고.  좋은 발상이면 행복하고, 두 문장째부터 덜컥 걸리면 절망하고 그러면서 보냈는가 보다. 

우리 삶이란게 예기치 않은 기쁨이란 게 극히 드물어서 안 살아봐도 내일이 빤하다.(물론 불행은 늘 예기치 않고 한 방에 훅 가게도 하지만)

그런데 오늘, 예기치 않았던 기쁨, 그것도 절정의 기쁨이 있었다. 우리집 두마리 개들 때문이다.  늘 앞마당으로 뒷마당으로 풀섶을 뒤지거나 둘이 엉켜 퍼져 있는게 다인 걸레 행색의 개다.  주인은 밥 주는 거 말고는 해 주는게 없는, 마냥 놔먹이는 개.(두런두런 말은 잘 걸어주지만)  그래서 오늘같이 흐린 날엔 냄새가 쩌는.  오늘 어찌하다 대문이 조금 열렸던 모양이다.  퇴근하여 차를 세우는 순간 눈썹을 휘날리며 20여 미터 쯤의 골목을 광속으로 뛰어오는 두 녀석(개는 주인 차소리를 다 구분한다).  열두살 짜리 노견도, 부끄럼많고 소심하여 나한테도 눈치를 보는 꼬맹이도 이 순간은 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반가워 눈물이라도 뚝뚝 흘릴 기세다.  세상에,  내 생애에 이렇게 나를 반긴 사람이 누가 있었던가.  돌진하다시피 뛰어와선 낑낑거리고 뛰어오르고, 50년 이산가족이 상봉이라도 했나 싶다. 아, 우리는 저런 전폭적인 사랑을 배워야 한다.  울 뻔했다.  셋이 엉켜 골목을 뛰었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 내가 아는 가장 애틋하고 애닯고 소중한 단어 애기라고 불러 주었다. 

간식 때문에 나를 반겼는지는 모를 일이나  어쨌든 이러한 순도 백 퍼센트의 환대는 다신 또 없으리라. 쟤네들 아니면.......

 

ps.재미있는 건 현관 앞 신발장 위에 강아지 간식으로 둔 식빵 봉지에 오늘 아침 분명 두쪽이 있었는데 그게 없어졌다는 것이다.  택배기사가 왔다 갔던데   몹시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나야 개 간식주며 같이 먹기도 하지만 글쎄, 개밥을 먹었다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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