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우리나라)/전라남도

구례 연곡사(11.03.26)

heath1202 2011. 4. 2. 02:23

    늦은 시간이다.  좀 있으면 이른 시간이 될 것이다.  등뒤 티비에서는 이 시간까지 영화를 하고 있다.  홍상수의 "옥희의 영화"다.  전에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그냥 배우들끼리 지껄이게 둔다.  가끔 노회한 문성근의 목소리와 이선균의 조금 뜬 울림 좋은 목소리, 그리고 당돌한 정유미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내가 끝없이 돌리고 있는 음악소리가 더 크기 때문에 저들은 조금 딱해 보인다.  무시하는 관객 앞에서 연기해야 하다니... 연곡사를 생각하니 지리멸렬한 우리네 삶 따위는 잠시 잊고 싶어진다. 

    하루 여행을 꽉 차면서도  여유있게 만들어주신 박 선생님이 주신 고로쇠물을 홀짝홀짝 마시며 사진을 정리하고 있노라니, 조금 연곡사 느낌이 상기된다.  내일은 토요일이니, 잠 좀 안잔다고 걱정할 일도 아니다.  기분 내키는대로 실컷 헤매다 자도 되겠다.  행복하다.  잠자는 것도 행복하지만, 잠 안자고 노는게 더 행복하다. ㅋㅋ

 

   연곡사는 내가 본 절 중에서 가장 작은 절인 것 같습니다.  가람이라고 할 것도 없더군요.  요사채 빼곤 대웅전 대신 大光寂殿(대광적전 맞나요?)이라는 현판을 건 건물 한동 뿐이더군요.  그런데 왜 제가 이 절에 그토록 오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눈으로 본 오늘 전까진 늘 지리산 한 골짜기, 내가 가야만 하는 절이었지요.  제가 좀 감격시대인 경향이 있기는 한가본데(남들 얘기가), 그래도 연곡사에서의 감동은 정말 한방울의 과잉이 없습니다.  절앞에 그득한 매화가 아직 꽃을 피우진 않았지만, 그게 큰 대수는 아닙니다.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가 싶어 눈물이 나려 합니다.  제가 아는 누구는 대찰이  아니다. 끝.이라고 말을 맺기도 합디다만, 그 어디에서 이렇게 마음에도 분분할 꽃을 볼수 있을까요.  봄날이면 더욱 더 그리워질 곳이 될것 같습니다.

 

   종일 우리의 가이드를 자청하신 박선생님이 하루 여행의 마무리를 이곳에서 맺어 주셔 더욱 감사합니다. 해가 한뼘 밖에 안 남았는데, 하루를 알뜰이 채워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절에서 조금 아래 토지초등하교 연곡분교 두분 선생님 중의 한분이신데, 1학년에서 6학년 까지 7명의 어린이가 다니고 있다는군요.  가을엔 피아골의 단풍이 유명하니, 다시 오라고 간곡히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그렇게 사람을 성심껏 대하는 분은 처음 보았습니다.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으셨는데, 그렇게 너그럽고 지혜롭게 나이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연곡사 가는 길에 본 녹차밭.  가파른 산등성이를 이렇게 차밭으로 가꾸었군요.

 

이곳이 학생 7명의 연곡분교입니다.  학교 울타리 바로 밖이  계곡입니다.

 

이 소녀를 포함하면 학생이 여덟이 되는가요?  이 국적 모를 소녀는 이 산골까지 와서 독서를 하고 있네요.

 

 

 

 

만개한 꽃을 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겠지만, 조촐한 꽃나무 아래를 걷는 마음은 이미 꽃이 만개해 분분이 날리는 중입니다.

 

 

 

들떠서 촛점 안맞는 것도 몰랐던가 봅니다. ㅎㅎ

 

 

 

박선생님과 사랑에 빠진 남편.  쉽게 정을 안 주는 사람인데, 정말 많이 좋은 모양입니다.   

 

 

 

  

 

울안의 노란 꽃이 멀리서도 눈에 띕니다.  수선화겠죠?

 

아랫 동네엔 매화가 이르던데, 이 곳은 반대네요.

 

 

종무소 같은데, 대문이 참 예뻐요.

 

무슨 소망들이 이리도 많을까요...

 

 

 

 

 

 

 

 

 

 

 

또 하나의 부도로 갑니다.  돌을 쌓아 만든 길이 참 간결합니다.

 

 

 

 

 

 

오늘 사진을 너무 많이 찍었나 봅니다.  설마, 앙코르 빼곤 그래본 적이 없기에 카메라 밧데리를 여분없이 왔더니, 산수유랑 매화꽃에 취해 정신없이 찍다보니, 밧데리가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상용 똑딱이로 찍었는데, 해가 저물어가는 판국임에도 산수유꽃이 너무 잘 잡혔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