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즐거운 상상이다.
윤제림 시인의 새 시집 리뷰에 우리 학교 여교사가 창밖을 내다보는 시구절이 있다.
남편이 묻는다.
" 이 사람, 혹시 당신 아냐?"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그렇다면 좋겠다. ㅎㅎ
올봄, 가끔씩 뒷동에 갈때마다 봄볕 가득한 정림사지 울안을 넋을 잃고 내려다보곤 했었다.
십년을 파헤쳐 놓고 십년의 시간이 그저 퍼질러 앉아 있는 절터 한켠에는 봄내내 사람손을 타지않은 꽃들이 피고 졌다. 덧없는 시간처럼 꽃도 적막하게 별처럼 피고 졌다. 단정하게 어찌해야겠다는 결심이 없이 시간이 흐르다 잠시 그곳에 머물고 있었고, 봄볕도 시간과 함께 다사롭게 고여 있었다.
망연히 창턱에 턱을 괴고 내다보고 있을 때 그 시인이 나를 일별했을지도.
담장 하나 너머일 뿐인데 그렇게도 그리운 영토인양 그곳을 넋놓고 있는 내가 조금은 각별했을지도.
진실이 무엇이든 즐거운 상상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어째서 그곳을 거닐어볼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까? 통근 시간에 쫓기거나 병아리같은 애들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어서 득달같이 집으로 내달을 일도 없는데 저곳은 어째서 차마 발딛지 못하는 그리움이 되었단 말인가. 매일매일 그 앞을 지나면서 한가한 주차장에 잠깐 차를 세우면 될 터인데. 하는 일 없이도 이리도 인생이 이렇게 허겁지겁 내달았구나 생각한다. 곧, 해질녘, 너무도 소박해서 마음이 담백하니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무념한 작은 울안을 한번 거닐어야겠다고 큰 결심을 해본다. 어찌된 노릇인지 정말 큰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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