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말한대로 엄마의 화분 세 개를 물려 받아 지금 내 작은 베란다는 수년 만에 푸른 화초로 그득하다. 엄
마의 화분은 내 보기에 흔해 빠진 선인장 종류인데 크기가 흔치 않게 커서 혹시 죽일까봐 퍽도 부담이 된다. 게다가 엄마가 물려준 것이니.
꽃이 곱기로 선인장 만할까.
요즘 한 그루에서 진분홍 꽃이 만개 중이다.
식물 기르는 데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나날이 새로이 피는 꽃을 보니 내 맘도 설레고 흐뭇해져 틈틈이 들여다보게 된다.
엄마는 꽃조차 기대가 없었을까. 꽃봉오리 맺히고 있는 화분을 나에게 넘기며 참 표나게 개운해 했다.
엄마의 작은 공간은 이제 조금씩 넓어져 가기만 하고 있다.
나는 새 옷을 채우기 위해 옷장을 비우지만 엄마의 한 번 비워진 장롱은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 엄마의 장롱을 열어보면 반도 차지 않은 허전한 공간엔 서늘한 기운마저 감도는 것 같다.
이제 엄마에게 쓸모를 잃은 엄마의 남비며 양푼이며 오래된 접시들은 하나 둘 이웃들에게 넘겨져 좀 더 쓸모를 이어가게 될 것이다.
엄마가 떠나 보내는 것들은 이제 기약 있는 것들이 없고 남은 엄마는 삶이 그저 가볍고 한갖졌으면 한다. 누구에게도 그러하길 꿈꾼다. 내가 보기에 이미 많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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