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출라(도출 고개 ㅋ)에서 푸나카까지는 시종 내리막 길이다.
300년동안 부탄의 수도였던 푸나카에 이르기 전 모내기 한지 얼마되지 않는 들판 너머에 치미 라캉('라캉'은 '사원'이라는 뜻)이 보인다.
치미 라캉은 마을의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큰 길을 벗어나 20여분 쯤 논두렁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물도랑에 물이 시원스레 콸콸 흐르고 뿌리를 잡아가는 벼들이 싱그러웠으며 수로에는 물레방아 원리로 돌아가도록 한 마니차가 빠른 물살에 따라
격렬히 돌아가고 있다. 또 어디에나 그렇듯 들발 한 가운데에 룽다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이렇게 룽다와 타르초를 만나고 다니니 저 바람 따라
흩어지는 진리의 말들 중 한 귀절 쯤은 벽창호인 나에게도 닿으리라 싶었다.
치미 라캉에 가는 중에 마을을 통과하게 되는데 민가의 벽에 온통 남근이 그려져 있거나 남근상이 진열되어 있다. 너무도 생생하게 표현을 해서 처음엔 좀 민망할 정도였다.
치미라캉 사원의 기원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기행을 행했던 드럭파 쿤리에 있다.
그는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살았던 이로 티벳과 부탄을 주유하며 중생들을 제도하였는데, 정통적인 방식이 아닌, 미친 승려라는 별명에 걸맞는
파격적이고 심지어 외설적이기도 한 행각을 하였다.
부탄에서는 손님에게 '까따'를 목에 걸어주는 풍습이 있는데 어느 날 두럭파 쿤리가 어느 마을을 방문하니 한 사내가 쿤리의 목에 '까따'를 목에 걸어주었다.
그러자 스님은 '까따'를 자신의 성기에 휘어감고 그 사내에게 많은 여인이 함께 할 행운을 빌어준다. 인구가 희박한 부탄에서는 다산이 큰 행운인 것이었다.
지금도 부탄의 가정집에서는 처마 밑에 남근을 매달아 놓거나 남근 그린 그림을 걸어 둔다.
영어공부에 열심인 동자승들
하교하는 초등학교 꼬마들을 만났다. 내가 만난 부탄의 아이들은 의사표현이 분명하고 영어를 곧잘 했다.
이 꼬마들도 내가 묻는 말에 답할 뿐 아니라 나에게 질문도 거침없이 했다.
특히 오른쪽의 고학년 소녀는 야무지기가 차돌 같았다.
치미라캉에서 머잖은 전망좋은 현대식 레스토랑 화장실. 남근이 풍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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