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렌지 후드의 성능이 시원치 않았다. 시원찮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공기가 역류하는 것 같앗다. 그래서 밖에서 통풍구 청소도 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게으른 주부가 요리를 했으면 얼마나 했다고.
결국 갈기로 작정하여 뜯어보니 렌지 바로 위로 딱새집이 두 채나 더 있었다. 말하자면 집안까지 딱새집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두어 해 대문앞 우체통 안에 딱새들이 둥지틀고 알을 품던 때가 있었다. 놀랄세라 지나치며 흘끔 훔쳐보는 것만도 참 기쁜일이었다. 생명을 눈 앞에서 목도하는 일.
그러다가 집도 허물지 않은 채 기다려도 새봄에 딱새가 오지 않게 되어 허전한 마음이 컸는데 어쩌면 녀석들은 요리하지 않는 사람을 용케 알아 깊은 후드환풍구를 찾아내었는가 보다. 첫집 때나 가끔 힘들었지 후드 가동을 포기한 후부턴 이보다 아늑한 안식처는 없었을 거다.
이제 어쩌나. 내년엔 부산하게 새 집터를 물색해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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