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하고 나니 이제 목표는 삶의 정리로 도약을 해버렸다.
남들은 날더러 한창 나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정신에 조로증이라도 앓는 건지 벌써 자리잡고 앉아 오는 노쇠를 대비하고 싶어진다.
그 일환으로 벌인 일이 집정리인데, 바깥 공사는 사람은 착하나 여가선용하듯 참참이 일을 하는 통에 일이 한없이 늘어져 이미
나에게 신용을 잃은 업자를 만나 이십일이 되도록 지지부진 하고 있고 마무리를 기다리다 지쳐 오늘부터 실내공사에 들어갔다.
급한 물건만 싸가지고 나와 가끔 공사진행이나 들여다봐가며 놀다가 공사 끝난 다음에 돌아오면 좋으련만,
가여운 내 두마리 냥이녀석들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이구석 저구석 공사 과정에 따라 옮겨지내야 하게 생겼다.
오늘은 유일한 안전지대인 안방에서 냥이들과 룸메이트로 하루를 보냈다.
냥이들은 상상을 초월하게 예민해서 식겁할 일들이 가끔 있는데 , 특히 구름이가 사람들을 접한 경험이 적다보니 낯선 이만 보면 패닉 상태가 된다.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지, 뛰쳐 나갈까봐 몇 번이나 식겁했다. 이 순둥이가 엊그제도 공사관계자를 보고 놀라 안고 있던 나를 온통 할퀴고
품을 벗어나 뒷담을 넘을 뻔 했었다.
오늘은 화장실 공사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는데, 다 파헤쳐놓고도 그나마 변기와 세면대를 마지막으로 끊겠다며 남겨두어 눈물나게 고맙다.
그런들 낮동안에는 화장실을 못가 울 뻔 했지만.
일 끝나고 먼지 구덩이를 대충 물걸레질 치고, 이 와중에 더는 미를 수 없을 것 같아 된장 가르기를 하노라니 집안이 간장 달이는 냄새가 진동한다.
처음으로 담근 간장, 된장, 아무래도 망한 것 같다. 때깔이 영 이상하다.
냥이들은 인부들이 떠나고 나서도 한참을 경계하다가 조심스레 기어나와 폭격맞은 집안을 갸웃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우리 운정이처럼 빈집에 묶어놓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내일은 어디로 피난해야 할까.
컴퓨터가 맛이 가서 다섯번 중에 한번 부팅이 된다. 공사나 끝나야 손을 보지. 온통 뒤숭숭......
캐리돌 뉴스나 봐야겠다. 사면퀴즈 참 웃기다. 범이도 웃기고 윤선이도 웃기고.
6월 중순에 부탄에 간다. 3월에 남미에 갈까 했는데 걸리는 게 많아서 못갔다.
무엇보다도 구름이, 제니, 운정이 때문에. 얘들이 이렇게 내 마음을 붙들 줄이야.
하지만 부탄은 열흘 일정이니 남의 손을 빌리기에 염치불구할 만하다.
떠나갈 때를 아는 사람처럼 집정리 잘 마무리하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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