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삶이 미풍 같아서 심란한(17.4.28)

heath1202 2017. 4. 28. 02:01

삶에 다그침이 없어지니 몸과 마음이 평안한 건 말할 것이 없다. 

게으름을 피운다 해서 나무랄 이도 없고, 혹시 무엇엔가 부산을 떨다 허덕인다 해도 오롯이 내 의지요 선택이니 노예적 삶인가 불안할 것도 없다.

대체로 삶은 내 의지대로 운영이 되고 있고 이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좀체 누릴 수 없는 꿈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퇴직하고 두 달이 되어가는데, 벌써 이런 저런 공과와 의미를 따지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임을 알면서도

마냥 여유롭고 너그럽게 스스로의 생활이 보아지지가 않는다.

그동안 강박적으로 치열함을 인생의 목적으로 강요해온 후유증이요 관성인가 보다.

맘만 먹으면 종일을 뒹굴거릴 수 있음에도 하루도 그렇게 보낸 적은 없다.

잠자는 시간은 별로 늘지 않았고 몸 재게 움직여보려고 의식적으로 좁은 집안을 서성거리며 사소한 집안일로 오전을 보낸다.

주중 오후엔 반드시 서너 시간은 책을 읽고 조금씩 교우의 폭을 넓혀 보려는 시도도 조심스레 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것이 너무 헐렁하다.

내게 싸움을 걸어오는 것이 없으니 영혼은 늘 잔잔하고 느긋하여 탄성이 없다.

줄풀려 쉬고 있는 현악기 같다고나 할까. 아무런 음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거친 싸움 속에 다치고 절망하고 아픔을 견디고 상처에 새살이 돋는 환희도 있는 삶의 역동이 없다.

나는 지금 너무 평화로워 설령 내가 고통을 얘기한다면 조작이거나 사기이거나 얍삽한 관념일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별로 할 말이 없고 할 수도 없다. 내 영혼의 부박과 옹색을 뛰어넘는 통찰이 있기 전까지는 내내 그럴 것이다.

판단을 유보한 채로 묵묵히 삶을 관망하고 있다. 고작 두달이 흘렀을 뿐이고 서둘 이유는 없다.

아직 나는 난생 처음으로 주어진 평화와 여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많이 어리둥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