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2017년을 맞으며(16.12.31)

heath1202 2016. 12. 31. 06:10

오늘은 미루던 건강검진을 했다.

마감을 하루 앞두고야 어렵게 해내었으니, 게으름은 역시 평생 고치지 못할  내 유전자다.

그나마도 다른 병원이나 이웃 도시에 가서 검진해야 할 내시경, 산부인과는 포기하고 말았다.


건강검진 끝나고 착하게도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한 사흘 전 쯤 엄마의 맏여동생인 큰이모가 와계신다는데 팔십 둘과 팔십이 다 된 두 노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먹을 건 넉넉한지, 필요한 건 없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현대옥에 가서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 해장국 2인분, 매운 돼지국밥 2인분, 그리고 마트에 들러

며칠 전 이를 네 개나 뺐다는 이모 중심으로 무른 음식 위주의 간식들을 바리바리 샀다. 

엄마와 이십오 년이나 터울이 지는 막내이모까지 큰언니들 보러 와 있어 함께 점심을 먹었다.

사실 이런 이른 내 이기적 본능과 거리가 먼 일임에도 요즘은 본능을 거스르며 오로지 의지로 효녀 아닌 효녀 노릇을 가끔 하고는 한다.

엄마가 마음에 걸려 견딜 수가 없어 미루고 미루다가는 결국 전화를 하고 찾아가 본다. 추우면 추워서 더우면 더워서.

나를 이렇게 만드는 것은 엄마의 나이다.

노쇠에 대한 안쓰러움이 나의 성가심보다 훨씬 강해졌고, 평생 희생으로 점철하다 늙은 가여운 한 인간을 외면한 후에 겪게 될

회한이나 죄책감 같은 것은 면하고 싶다.

집에 가니 세 자매가 둘러 앉아 콩을 고르고 있다.

내가 세상에서 본 가장 순한 사람 중 하나인 막내이모를 비롯한 세 자매의 대화를 듣노라면 내 어지러운 세상과는 전혀 다른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내 가족하고도 같은 찌개 그릇에 수저를 넣지 않으려 하는 내 까탈스러움을 티 안내고 함께 점심을 먹고 평생 희생을 희생으로도 여기지 않고

착하게만 살아온 막내이모를 주저 앉히고 내가 설거지를 하며 나도 나이 들며 많이 변했다고 생각을 한다.

좀 사람이 되어가는 건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너구리 한 마리가 피부병인가 털이 다 빠진 채 도망도 채 못가고 저만치서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먹이를 기대할 마지막 대상이라고 여긴 것인지. 그렇게 깡말라 있다. 텔레비전에서 비슷한 행색의 너구리를 본 적이 있었다.

가지고 있던 튀김 한 덩어리를 던져주니 허겁지겁 먹는다. 너도 이 겨울이 참 힘든 모양이구나. 새 봄을 볼 수는 있겠는지.


올해가 다 갔다. 

해가 바뀌는데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편이지만 올해는 잊지 못할 해가 될 것 같다. 탄핵정국과 광화문 집회, 그리고 내 직장생활의 마지막 해로.

올 마지막 밤도 광화문에서 보내려 서울로 올라간다. 신대철 공연도 한다고 하니 재미있겠다.

새해엔 모두 꽃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유재석의 말은 어림도 없는 고단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래도 모두가 걸은 만큼은 목적지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모두 애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