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날을 카운트다운 중이다.
29년 6개월을 해온 일을 이제 접으려고 한다.
남은 시간은 휴가 빼고 열흘 남짓, 한 해의 마무리로 정신 없는 요즈음인데, 아무리 약한 정신력이라 해도 이쯤 못견디랴,
'유종의 미'를 주문처럼 외우며 하루하루를 이기고 있다.
그간 방어에 급급했던 삶이다.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할 괴물같은 거대한 틀 속에서 나의 영역을 어떻게 하든 한 뼘이라도
확보해보고자 안간힘을 쓰며 산 시간이었다.
돌이키면 보람이야 왜 없었겠는가마는, 언제부턴가 그 보람과 내 삶의 성취의 불일치가 견디기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그 깨달음 후에도 한참을 먹고 산다는 일의 무자비함을 새겨야 했다.
마침내 끝이다.
한가지 한가지 마무리 해야할 일들이 끝내가고 있다.
삶이 미치게 지겨웠던 순간이 심심치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간의 삶이 썩 잘 살아온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손발 들고 나가 떨어져 그만두는 것은 아니니 그나마 고맙다.
앞으로의 시간이 오롯이 나만의 것일리야 있겠는가마는 꽤나 넉넉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제 내 삶의 공허, 혹은 무의미는 내게 달린 일이다.
내 삶의 절망에 누구를, 다른 무엇을 탓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나는 숨이 쉬어진다.
관망과 설계. 즐거이 남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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