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 날에, 아마도 올가을 들어 가장 눈부시다고 할 만한 날에 영화 두 편을 관람했다.
가을 경치는 백제 큰길 강변을 달리는 것으로 가름했다.
우선 오전에 본 영화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이었다. 하루 한 회 밖에 상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휴일 치고는 좀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영화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니 기대 이상의 훌륭한 영화였다.
이렇게 괜찮은 영화가 한 회 상영이라니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는 탄탄하게 잘 만들어졌고 재미도 충분히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엄청 울었다.
세월호 비극이 떠오르면서 울분과 슬픔을 걷잡기 힘들었다.
새떼에 부딪혀 두개의 엔진이 모두 불능상태가 되어 강에 불시착한 비행기사고가 있었다.
(물론 이 비행기 사고는 뉴욕을 허드슨 강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탑승객 155명은 몇 명만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 24분 만에 전원 구조되었다. 민과 관,
그리고 비행기 승무원은 일사불란하게 상황을 통제하며 구조작업을 하였고
사고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떠난 사람은 기장이었다.
청문회가 있었고 사건의 전모는 객관성을 유지하며 의문의 여지없이 밝혀졌다.
이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세월호 사고와 모두가 반대였다.
선장은 제일 먼저 제 목숨을 구하고자 배를 떠났고, 구조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사건의 전모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솔직히 미국이 이렇게 부러워 본 적이 없다.
극장 앞 잘가는 집에 가서 소바와 알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영화관으로 컴백, "죽여주는 여자"를 관람했다.
솔직히 이 영화관람은 소재가 좀 불편(!)해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나 느와르 영화들, 혹은 사극들을 볼 때 처럼 스트레스가 좀
세지 않을까 고민을 좀 했다. 그러나 씨네21 평점과 영화평, 그리고 배우 윤영정, 이재용 감독을 믿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의 내용은 전혀 선정적이지 않다. 사실 박카스 아주머니라는 설정은 윤여정이 다양한 부류의 인간군상
만나게 하는 매개로 더 큰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늙은 매춘부는 그녀가 만나는 음지 속의 인간들 중 하나일 뿐이다.
"죽여주는 여자"라는 제목은 굳이 숨겨져 있지 않은 중의적 의미다. 본디 성적으로 죽여주는 여자였으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죽여주는 여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녀 행위의 정당성을 따지는 것은 의미없다. 삶이 아름다운 이에게나 목숨이 아까운 것이지 아무런 희망이 없이 앞으로 더욱
더 막막한 절망만이 기다리는 삶에게 삶의 소중함을 말해 무엇하리. 막막함을 덜어주는 이가 세상이 아니라면 이렇게 죽여주는
여자라도 있어야겠지.
영화의 진행이 너무 직진이어서 오전 영화의 빈틈없음에 길들은 머리가 처음에는 좀 당황했는데, 지나고 나니 구구함 없는 그 뚝심이 오히려
적절한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컴한 영화관에 있느라 좋은 햇살을 놓쳤지만 하나도 아쉬움 없는 하루였다.
<출처: 다음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2016)Sully
개봉 2016.09.28 개봉
영화시간/타입/나라 96분, 12세이상관람가
나라 미국
감독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주연) 톰 행크스
줄거리
2009년 탑승객 155명을 태운 비행기가 허드슨 강에 불시착, 전원이 생존한 비행기 사고의 전말을 그린 감동 실화.
<출처: 무비라이징>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이하:[설리])은 사건의 당사자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에 의해 가려졌던 진실을 냉철하게 담은 작품으로 그날의 기적이 발생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허드슨 강의 기적을 만든 설렌버거 기장의 영웅적 면모를 강조할 줄 알았던 영화는 냉정할 정도로 그에게 책임을 묻는 조사위원회의 의문을 부각하려 한다. 기장의 기지로 전 승객의 목숨을 구했지만, 시뮬레이션 상 근처 공항에 착륙해도 무방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설렌버거를 향한 불신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설리]는 영웅의 면모를 벗고 갈등하는 설렌버거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면서 당시 그의 판단을 놓고 판단이 과연 정확했는지 의심을 하게 한다.
설렌버거를 압박하는 위원회가 '악'으로 보일 수 있는 대립 구도지만,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위원회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면서, 팽팽한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양측의 대립과 입장을 유심히 담아내며, 전개상의 긴장감을 살려낸 동시에 9.11 테러 이후 참사의 후유증을 지닌 미국인들의 민감한 심리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가 설렌버거의 시선만 빌렸을 뿐, 실질적인 주제가 매우 포괄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스트우드가 그려낸 '민감함'은 부정적 시각이 아닌 긍정의 의미로 영웅을 탄생시킨 원동력으로 해석한다. 9.11 테러의 참사를 떠올리며 기장으로서의 기지를 우선적으로 발휘한 셀렌버거, 사건 방지를 위해 냉철하게 조사하고 대립하는 위원회 모두를 동등하게 그려내며 당시 사건을 현실적으로 다룸으로써 각자의 분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모든 이들을 영웅으로 그려내려 하고 있다.
그 시선은 허드슨 강 사태를 생생하게 그려낸 후반부로 넘어오면서 비행기 승무원, 허드슨 강 주변의 경비대와 인근 주민들에게 넘어간다.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극적인 전개로 표현함으로써 9.11 후유증을 스스로 이겨내려는 미국인들의 의지가 강렬하게 그려진다.
팽팽한 대립구도 속에 이어지는 구조 장면은 [설리]에서 유심 있게 봐야 할 장면이자, 영화만의 감동을 불러오는 부분으로 다큐로 표현될 수 있었던 실화물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게 한 의미 있는 대목이다.
주인공 설렌버거에 대한 정의도 빼놓지 않는다. 영웅이기 이전에 자신의 판단에 의심하는 그의 모습은 인간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순수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기장의 책임과 의무를 지닌 성실한 인간의 표본을 보여준다. 긴박한 비행기 탈출의 순간에도 모든 승객의 인명을 확인하 며 기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은 톰 행크스의 내면 연기와 혼연일체가 되며 깊은 여운을 남기기에 이른다.
진지하고 냉철한 분위기 속에 장르 영화의 장점을 적절하게 사용하며 메시지를 표출하는 대목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건재함을 확인시켜 준다.
[설리]는 미국 관객뿐만 아니라 한국 관객에게도 꽤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물에 빠져 침몰하는 비행기의 모습과 주변 배들의 도움을 통해 안전하게 구출되는 승객들의 모습 속에서는 '세월호'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설리]가 미국인들의 상처를 위로하며 희망을 심어주는 메시지를 지녔듯이, 동일한 아픔을 지닌 우리에게도 그러한 여운을 비롯한 교훈을 동시에 전달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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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 영화>
죽여주는 여자 (2016)The Bacchus Lady
장르 드라마
개봉 2016.10.06 개봉
영화시간/타입/나라 111분, 청소년관람불가
나라 한국
감독 (감독) 이재용
주연 (주연) 윤여정
나랑 연애하고 갈래요? 잘 해 드릴게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 노인들 사이에서는 ‘죽여주게 잘 하는’ 여자로 입 소문을 얻으며 박카스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트랜스젠더인 집주인 티나, 장애를 가진 가난한 성인 피규어 작가 도훈, 성병 치료 차 들른 병원에서 만나 무작정 데려온 코피노 소년 민호 등 이웃들과 함께 힘들지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한 때 자신의 단골 고객이자,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다 그를 진짜 '죽여주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의 부탁이 이어지고, 소영은 더 깊은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 [죽여주는 여자] 그 여자의 항변
<정사>로 데뷔한 후 <순애보> <스캔들>을 연이어 내놓던 시절의 이재용 감독은 모던하고 쿨한 작품세계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화녀>로 데뷔한 후 긴 세월 동안 숱한 배역을 맡아 연기하면서도 당당하고 도회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던 윤여정은 쿨하고 모던한 개성을 가장 오래 간직해오고 있는 배우일 것이다.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을 여전히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신작 <죽여주는 여자> (10월6일 개봉)를 보며 사뭇 놀랄 것이다. 인물과 주제에서 화법과 스타일까지, <죽여주는 여자>는 그들의 필모그래피에서 이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상황 설정이 없진 않지만, 이 영화는 인물들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디테일과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는 뚝심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일평생 고단한 삶을 살아온 소영(윤여정)은 65세가 되어서도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며 하루하루 지낸다. 병원에 갔다가 한국 남자와 필리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 민호(최현준)가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보게 된 소영은 자신의 거처로 데려간다.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인 티나(안아주)와 또 다른 세입자인 피규어 작가 도훈(윤계상) 역시 민호를 함께 돌본다. 예전 단골 고객이었던 재우(전무송)를 우연히 만나게 된 소영은 그에게서 친구들 이야기를 전해 듣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마주치게 된다.
묵직한 주제를 정공법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죽여주는 여자>는 재기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인간의 온기를 내내 품고 있어서 뾰족하거나 거칠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재용은 소위 주류 사회에서 벗어나 있는 트랜스젠더와 장애인과 코피노와 성매매자가 대안가족의 형태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광경을 인간미 넘치게 담아낼 뿐만 아니라, 그들 각자를 품위와 여유를 함께 갖춘 인물로 그려낸다.
그 한가운데에는 윤여정이 있다. 일정한 나이가 지난 여자 배우는 모성의 담지자로만 활용되는 풍토 속에서도 그는 1인분의 삶을 그대로 어깨에 걸머진 단독자의 모습으로 오랜 세월 돋보이는 연기를 펼쳐왔다. 배우의 개성과 캐릭터의 성격이 겹치거나 어긋나면서 빚어지는 흥미진진한 풍경들은 이 영화에 멈추지 않는 동력을 제공한다. 극 중 인터뷰를 요청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할머니, 할머니, 하지 말아요. 듣는 할머니 기분 나쁘니까"라고 쏘아붙이고, 과거를 캐묻던 그가 "그러면 미군을 상대하신 거예요?"라고 하자 "그럼 일본군 상대하냐? 나 그만큼 나이 많지 않아"라고 되받을 때, 이 솔직하고 유쾌한 배우는 고스란히 관객의 사랑을 가져간다. 길고양이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자 음식을 챙겨 들고나가고, 뉴스에서 거론되는 범죄 용의자를 향해 "저 사람이 무슨 사연이 있겠지. 아무도 남의 속사정은 모르는 거거든"이라고 혼잣말할 때, 이 정 많고 사연 많은 인물은 온전히 관객의 마음을 얻는다.
하지만 위트와 배려를 갖춘 화술에도 불구하고,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무거워진다. "다들 손가락질 하지만 나같이 늙은 여자가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일이 많은 줄 알아?"라는 소영의 항변이 드러내듯, 이 이야기엔 노인문제, 여성문제, 빈민문제가 총체적으로 녹아 있다. 이건 삶의 방식이나 삶의 선택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삶의 전제나 삶의 권리에 대한 문제이다. 전쟁고아로 삶을 시작해 밑바닥 삶을 전전해온 소영의 일생은 성장의 속도감에 도취되어 뒤처진 국민을 외면해온 역사와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소외된 구성원을 희생시키는 사회의 부도덕과 무능력을 되비치는 거울이 된다. 그리고 그런 소영의 비극은 여성에게 더욱 가혹한 현실 속에서 고통이 배가된다.
서울의 가장 오래된 공원들인 탑골공원과 장충단공원, 수십 년 된 양옥집들이 낡은 주택가를 이루고 있는 이태원이 이 영화의 주요 공간으로 쓰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라져가는 사람들과 스러져가는 공간들. 퇴락하고 비효율적인 것들은 주저없이 흘려보내면 되는 걸까.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퇴장하고 싶은 소망은 무시해도 좋은 것일까. 극 중 소영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내가 미쳤지"라고 탄식하곤 한다. 그러나 정말 미친 것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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