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애기

까망이가 다쳤다(16.5.26)

heath1202 2016. 5. 27. 02:37

퇴근 무렵이면 눈에 띄던 까망이가 생활리듬이 바뀌었는지 한참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밥그릇은 계속 비워져서 걱정은 안했었는데, 어제 퇴근 무렵 까망이가 나타났다.

대문을 들어설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빈 밥그릇을 채워주려고 보니 밥그릇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혹시 발톱이라도 세울세라 조심조심 밥그릇을 채우는데, 배가 고픈지 불안한 얼굴을 하고도 물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오랜 만에 보는 몰골이 말이 아니다.

몸통엔 여기 저기 여나믄 군데는 털이 뽑혀 있고, 조막만한 얼굴에 할퀸 상처가 서너 군데나 있는데 분홍빛이 선연하고 피가 굳지 않은

것이 다친지 얼마 되지 않은 상처다. 어쩌면 싸우느라 기진했던가 아니면 호되게 당한 분과 서러움을 먹는 것으로 삭히러 온건지 모르겠다..

안스러워 가슴이 뭉클해진다. 네 세상살이도 만만치는 않구나. 손을 뻗으니 하악질을 한다.

길고양이 치고는 별로 지저분하지도 않고 워낙에 검고 흰 털이 균형있게 잘 나서 나름 귀티까지 있는 데다가

밥을 얻어먹는 주제 임에도 나에게 도도하기가 기가 찰 정도여서 가끔 주인 떠난지 오랜 빈집 토방 위에 몸을 한껏 늘인 채

뒹굴거리고 있는 것을 세상살이가 그런대로 그리 고되지는 않은가 보구나 싶어 많이 안도가 되던 참인데,

오늘 험한 상처에 그간 미처 보지 못했여기저기 적잖은 묵은 싸움의 흔적들까지 보게 되니 마음이 막 짠해지는 것이었다. 

밖에 나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주제에 고작 겁많은 나에게나 그렇게 발톱 세워가며 사납게 굴었단 말이냐.

어쩌면 네가 당해낼 상대라고는 전의 자체도 없이 너에게 졌다고 작정하고 드는 나 밖에는 없더란 말이냐.

기꺼이 까망이에게 약자가 되기로 했던 나는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나또한 나에게 한없이 약한 누군가를,

또 누군가는 비굴하도록 사랑에 목맨 나를 가장 만만한 제물로 삼아 제 삶의 고단함과 설움을 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밖에는 달리 사랑의 효용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양이도 아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