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부터 거둬 먹이는 길고양이가 있다.
이웃 아주머니의 모진 말을 묵묵히 삼켜가며 꿋꿋이 먹이주는 일을 계속한 결과
이제 아주머니의 포기 내지는 묵인을 쟁취한 것 같다.
다만 먹이 주며 한마디 보태기도 한다.
"많이 먹고 딴데가서 말짓하지 말아."
본래 노랑이 까망이 두 마리였었는데 노랑이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겨울 혹시 내가 여행간 사이, 혹독한 추위에 흉한 일을 당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까망이한테 밀려나 다른 영역으로 옮겨 간 건지 몹시 궁금하다.
부디 후자이길 빈다.
우리 집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두 집 사이의 짧은 골목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두집 중 한집이 빈집이 된지가 서너해에 접어들어 뒷마당은 잡초가 무성하고
오래된 담은 집이 주인을 잃은 후 하루가 다르게 부실해 지더니 여기 저기 금이 가고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담 안에 까망이가 있다.
뚫린 담장 안쪽에 앉아 나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다.
몇 시부터 그러고 앉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닷새 중 사나흘은 그러고 앉아 있다.
내가 제 앞을 지나가면 슬그머니 내 뒤를 따라와 밥그릇을 채워 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밥을 주는 손조차 제 앞을 얼씬거리면 하악질을 하며 할퀴어 대더니
이제는 본능에서 나오는 낮은 하악질 뿐 할퀴지도 도망가지도 않은 채 얌전히 밥을 먹는다.
물론 전혀 사람손을 타지 않아 만지는 것은 허락하지 않을 듯 싶지만 아무려면 어쩌랴.
녀석과 나 사이에는 이제 단 한 뼘 뿐의 거리 밖에 안되는 믿음이 있는데.
나는 생태학자 최재천 선생을 아주 존경한다.
우리나라 제일의 자연과학자일 뿐 아니라 든든한 인문학적 지식도 겸비하신 분이다.
얼마전 보게 된 그분의 강연.
서울동물원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을 책임 맡으셨다 한다.
돌고래는 이백킬로 미터를 헤엄치며 산다고 한다.
혹시 그만한 수족관에 가줄 생각이라면 가두어도 좋겠다.
그러나 돌고래는 음파를 통해 소통을 한다.
그 음파가 유리벽에 반사된다면 돌고래는 소리 지옥에 사는 셈이란다.
그 분은 DNA를 믿는 철저한 진화론자다.
DNA 구조가 밝혀진 후 사람이 정해진 DNA에 좌지우지 되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 허무해서
목숨을 버릴 생각조차 한 적이 있다 한다.
하지만 어느 결에 그것이 해탈처럼 편해지기 시작했다 한다.
이제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되는구나 하는.
맞는 말이다. 나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 분의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나를 감동시킨다.
사람들이 생존 이상으로 잔인하게 생산해 먹어대는 '고기' 가 슬프고,
기운 없다며 태연히 '남의 살'타령을 하는 사람들의 무감각이 환멸스러운 나에게
생명의 평등함을 믿고, 목숨, 생명의 무게를 아는 이들은 늘 큰 의지가 된다.
그 분 때문에 국립생태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길고양이일 망정 작년엔 제법 때깔이 고왔는데 길에서 사는 일이 녹록치 않은지 행색이 말이 아니다.
먹고 자고 나머지 하는 일이 그루밍인 짐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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