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우리나라)/충청도

당진 합덕 성당(16.4.30)

heath1202 2016. 5. 1. 12:35

합덕성당을 찾고자 한 것은 정말 즉흥적인 결정 이었다.

원래는 추사고택을 들렀다가 아산 공세리 성당으로 갈 예정이었다.

공세리 성당이 가을이면 그렇게도 아름답다고, 그리고 유서도 깊은 성당이라고 들어왔기 때문에

가을은 아니지만 아산 외암 민속마을 가는 김에 시간 조금 더 쓰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추사고택을 나서 얼마 지나지 않으니 합덕성당 갈색 안내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고작 5킬로미터. 가보자.

역사가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고딕풍의 언덕 위 성당이 생각보다 압도적이다.

전면의 조경도 깔끔하게 잘 되어있고 마침 봄꽃도 고와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 좋았다. 

성당 내부를 들여다보았는데, 깔끔하긴 했지만 예술적으로 특기할 점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만한 소읍에 이만한 규모의 성당이 필요한 것이라면, 인간의 종교적에 대한 갈망이 크긴 한 모양이다.

 

얼마전에 심리학 실험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그 중 한 챕터가 마약중독에 관한 것이다.

실험자는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아주 열악한 환경에, 한 그룹은 쾌적한 환경에 살게 한 후

마약 성분의 물과 그냥 물을 공급한다. 쥐들이 어떤 물을 마실 것이라 예상하는가.

열악한 환경의 쥐는 마약물을 마시고 중독이 되어 비참한 몰골로 죽는다.

공원처럼 쾌적한 환경의 쥐는 그렇지 않다.

실험자는 사람도 그렇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처럼 마약은 니코틴 만큼도 중독성이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마약에 취해 살게 하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의 실험은 (의도적으로) 외면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환경을 개선한다는 것은 정치적 이해가 걸린 일이므로.

그러면서 마약의 해악만을 부각한다. 비참한 환경, 즉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그릇된 선택 문제로 오도하는 것이다.

 

혹자는 신성모독이라 기분 상하거나 분개할 지 모르지만, 나는 종교가 마약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편이다.

마약중독자의 온갖 흉칙한 모습은 상상하지 말아주길. 마약이 거슬린다면 진통제라 해 두자.

성당을 가고 솔뫼성지를 가면서 나는 그 실험이 생각났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종교는 필요할 것이다.

인간에게 완전한 평화는 없을 것이므로. 영원히 불안한 존재를 위한 진통제 내지는 마약이 필요할 것이므로.

솔뫼 성지의 역사관에서 시사할 만한 글귀를 발견했다.

처음에 윤리규범적 성격이 강했던 천주교가 기충민중속으로 들어가면서 복음주의적 성격으로 변질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현세에서는 결코 벗을 수 없는 삶의 굴레속에서 무엇으로 위안을 얻을 것인가.

처음 천주교가 도입될 때는 아마도 천주교는 조선의 개혁을 갈망하던 지식층의 새로운 사상에 대한 호기심 내지는

학문적 관심 측면이 컸을 것이다. 그들은 사회 경제적 지위가 그리 열악하지는 않았을 테니 기층민중과는 달리

천국에 그리 매혹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회안전망이 비교적 튼튼하게 갖춰진 북유럽국가에서 신이나 천국에 무관심한 세속적인 종교관이 만연한 것과 통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마약도, 종교도 잊을 만큼 아름다운 세상이 온다면.)

 

주변에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들이 많다.  그들이 어떠한 태도로 종교를 믿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종교를 통해 삶에 대한 고민을 하고 성숙된 삶을 지향할 수 있다면 유익한 일일 것이다.

무신론자이지만 나도 신비한 느낌을 종종 갖는다. 불가지한 것들에 겸손해지고, 오묘한 것들에 찬탄을 한다.

320킬로의 속도로 멋지게 나는 새매의 완벽한 진화에 감탄하고 빈틈없이 긴밀히 짜인 자연의 법칙에 겸손히 무릎 꿇는다.

종교는 없지만 나는 인간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선하고 정의로운 삶을 고민한다.

모든 기도와 경외와 도덕적 선택에 다만 나는 종교라는 중개자를 요하지 않고 그에 기대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따름이다. 

의심많고 분방한 기질 탓일까.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는 거론할 것도 없고, 순한 양이 된다는 것, 심지어 종이 된다는 것,

누구에게든, 무엇에든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나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굉장한 결단이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대단한 가치일 지라도 받아들이는 방식(형식)까지 받아들이기 나는 어렵다. 

가장 절대적 복종이 요구되는 것이 바로 종교일진대, 그러므로 나는 종교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의 교리를 접하게 된다면 내 나름으로 이해하고 판단하여 귀하고 아름답고 참된 가치들을 추려 받아들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