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는데(<<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얕고 넓게... 이것이 나의 지식 탐구 자세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다. 시간은 짧고 알고 싶은 것은 많으며 또한 직업적으로 깊게 우물 파야 할 요구도 없으니 아무런 부담없이 그때그때 마음 끌리는대로 편하고 여유롭게 독서를 하는 편이다.
어느 때는 소설에 탐닉하고 어느 때는 시에 감성을 푹 적시다가 또 어느 때는 얍싹하게 철학 개론서도 조금 들춰보다가 가끔 사회학 도서도 조금 읽는다.
볼것도 많고 들을 것도 많고 가볼데도 많은 세상이니, 생활도 그런 식이어서 독서에 오롯이 할애하는 시간은 별로 크지 않지만 늘 손닿는 데에 책을 수북이 쌓아놓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읽는 데에 비해 흡수되는 양분은 별로 없으니 성격이 단순하고 급해 읽고 난 것을 꼼꼼히 정리하고 기억하는 데에 너무 게으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마음 속으로라도 리뷰를 해본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투입된 시간과 노력과 금전(책값) 대비 수확하는 지식이 너무 알량해서 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니 가끔 내키는대로 읽은 책에 대해 몇 줄 남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된 리뷰들이 인터넷세상에 넘쳐나니 필요한 지식은 그곳을 헤집으면 될 것이고 나는 그저 나 자신을 위해 몇 줄, 그야말로 몇줄 아이들 독서 기록장 쓰듯 간략히 써가며 머릿속으로 다시한번 내용을 정리해 볼 기회를 가져보자는 것이다.
얼마 전 필 주커먼의 <<신없는 사회>>를 읽었다. 이 책의 몇 줄이 전에 읽은 다른 책에 인용되어 제목을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어느 도서목록에서 다시 보게 되어 주문을 한 것이다. 종교에 대해 대단한 관심도 없고 관심가질 이유도 없으므로 종교서를 거의 읽지 않지만 세계에는 종교인이 무신론자보다 훨씬 많으니 인간에 대한 관심측면으로라도 조금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저자는 미국의 사회학과 교수로서 덴마크에 1년을 체류하면서 덴마크와 스웨덴 사회와 사람들을 접하면서 그 사회의 물질적 풍요, 평등, 높은 도덕성을 그사회의 신과 종교에 대한 태도와 결부지어 연관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다음은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을 중심으로 한 <<신없는 사회>>의 요약.-일단 내 의견은 배제.
요즘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종교적인 것 같다. 광적인 형태의 이슬람교가 세속화되었던 국가들까지 근본주의로 채우고 사람들은 종교적 헌신을 다진다. 남미에서 개신교 복음주의 전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오순절교회도 세력을 넓히며 심지어 중국에까지 진풀하고 있다. 무신론을 강요받았던 구소련 체제하의 국가들에서도 여전히 신앙은 손상되지 않고 종교적 활기와는 거리가 멀던 캐나다까지 종교적 르네상스를 겪고 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이 종교적 열정으로 들끓고 있다."(피터 버거)
미국 사회에서는 캘리포니아 남부를 돌아다녀 보면 자동차의 세대에 한대쯤은 하느님이나 성경을 찬양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있고 기독교 관련 광고판과 텔레비젼 광고가 넘쳐나며 정치가들은 공공연히 종교적 발언을 한다. 조지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 하느님께 조언을 구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 말에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그 발언은 신뢰를 높이는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비종교적인 지역이 세계에 몇 군데 존재하는데, 덴마크와 스웨덴, 이 두 나라는 십중 팔구 가장 덜 종교적인 국가일 것이다. 작지만 행복하고 튼튼한 세속주의의 배. 비종교적인 사람들을 위한 지상 천국이 있다면 현재의 덴마크와 스웨덴일 가능성이 높다. 신이 없는 사회가 단순히 가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점잖고 쾌적한 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근본주의가 점점 세력을 얻고, 종교와 정치가 더욱 강하게 결속하는 시대에 이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종교적인 믿음이 없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건실한 법을 만들어 지킬 수 있고, 도덕과 윤리로 이루어진 합리적인 제도를 따를 있고 기도를 포기하고 성경을 공부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예의 바르게 대할 수 있다. 또한 죽음 등에 대한 종교적 위안도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내세에 관심이 없다. 삶의 의미에 대한 답변을 위한 종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들은 삶에 별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교적 죄악'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경이 신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들 중 상당수가 신을 믿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신은 자기들 나름대로 해석해서 만들어낸 모호한 개념이다. "인격체의 특징을 갖춘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스웨덴인은 2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그 사람들조차 믿음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미국인인 '나(저자)'는 종교의 존재가 미미한 그런 사회에서 신선함과 안도감조차 느꼈다. 비신자이고 불가지론자인 저자가 미국 사회에 살다보면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종교의 사회에 대한 온갖 기여에도 불구하고 사회전체에 퍼져있는 기도, 범죄율의 증가를 사탄의 탓이라고 말하는 경찰, 진화론에 대한 이의 제기 등등.
엄밀히 말하면 덴마크와 스웨덴 사람들 대다수는 여전히 (루터교전통의) 국교회에 속해 있고 교회세를 낸다. 교회에서 결혼식 올리는 것을 선호하고 아이가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문화적 전통(종교적 색채가 가미된 세속적 전통)일 뿐 믿음이나 영적인 확신 때문에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순전히 "다들 하는 일이기 때문에."
덴마크인과 스웨덴인은 대부분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덴마크인 82퍼센트가 다윈 이론을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대부분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예수를 믿지 않고 죄악이나 구원, 부활도 믿지 않고, 심지어 하느님도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다니. 연구결과, 그들은 문화적 전통이나 역사적인 의미에서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기독교인'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를 지니느냐고 물으니 그들은 한결같이 같은 것들을 강조했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가난한 자와 병자를 돌보고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기독교인의 의미를 설명할 때 하느님이나 예수, 성경을 언급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거나 메시아였다고 믿느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그들은 거의 모두 아니라고 대답했다.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거나 무덤에서 일어났다는 건? 이런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 진심으로 우습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미국인의 75퍼센트가 지옥을 믿는다고 하는데 덴마크와 스웨덴인은 10퍼센트만이 믿는다. 미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 기독교에 대해 배우지만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아주 조용한 위치를 차지한다.
정치에 있어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믿음이 있고 공개적으로 표현을 한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정치가는 공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64퍼센트이다. 신앙이 독실한 사람들이 공직에 더 많이 진출하는 것이 나라에 좋은 일이라는 의견에 75퍼센트가 동의한다. 그러나 덴마크는 신앙이 깊은 사람이 공직에 진출하는 것을 국민이 아주 달가워하지 않는다. "종교는 개인적인 문제이고, 반드시 개인적인 문제여야 한다."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어린이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 따돌림을 받는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에서는 공개적으로 하느님이나 예수를 믿는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 비정상적인 사람, 괴짜로 낙인 찍인다. 젊은이들에게 종교는 일종의 금기다.
종교와 사회적 건강 사이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세속주의가 사회에 항상 좋고 종교는 항상 나쁘다거나 그 반대의 주장은 옳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를 건강하고 번영하게 만드는 데 종교가 확실히 강렬하고 긍적적인 요소가 된다. 그러나 종교는 긴장,폭력, 빈곤, 압제, 불평등, 무질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될 때가 많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나 강렬한 종교적 감정이 강한 나라라고해서 반드시 사회적 건강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지구 상에 존재하는 가장 독실한 나라들 중에는 가장 위험하고 가난한 곳이 많다. 사실은 가장 비종교적인 민주주의 국가 중 대다수가 지구 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성공적인 나라들에 속한다. 하느님과 내세에는 최소한의 관심만 갖고 일상생활의 문제를 합리적이고 세속적으로 해결하는 일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 스칸디나비아에서 긍정적이고 성공적인 사회라는 결과를 일궈냈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단순히 종교가 없으면 사회가 파멸한다는, 널리 퍼져있는 단언을 침착하게 반박하고 싶을 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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