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나만의 방을 갖는 꿈(16.2.6)

heath1202 2016. 2. 6. 03:15

어젯밤 몹시 아팠다. 어디랄 것도 없이 암튼 운신 못하게 아팠다. 모처럼 사흘 동안 정신없이 일을 하고 난 탓이다.

그래도 아직 몸이 완전히 삭아 버리진 않았던지 아침이 되어선 기신기신 일어나긴 했는데 여전히 정신이 몽롱하긴 했다.

헌데 참 배려없는 집의 영화광이 기어코 나를 극장으로 끌고 간다. 오로지 내가 강동원 좋아한다는 미끼를 이용해.

강동원을 보기는 해야해서, 강동원 출연 영화는 모두, 심지어 <<늑대의 유혹>>까지 다 챙겨 본 나이므로 무거운 몸 씻고 바르고

공주로 갔다.  아이구나, <<검사외전>>, 황정민도 강동원도 두고두고 찜찜할 영화다. 내심 필모그래피에서 슬그머니 지우고 싶지 않을까 싶다.

명색이 사기치는 영화고 법정 장면도 나오는 영화인데 한치의 어긋남없이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대로다. 감독이 아무리 

입봉작이어도 그렇지 <<베테랑>>이나 <<내부자들>>도 안보았나? 새로운 것이 한가지도 없다. 그렇다고 그럴싸한 클리셰도 아니고.

강동원 재롱으로 버티는 것도 힘겨웠다.

 

영화 다녀와서는 책을 좀 읽었다.  혼자 책을 읽는다는 것이 식구에게 꽤 신경 쓰이지만 시치미 떼고 그냥 읽었다.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잘난 이가 자기만의 방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여겨지겠지만 나같은 이가 그리 나오기는 나자신부터가 자신 없어지는

일이다. 한 공간에 가족이 있는 한 공동생활의 원활한 유지를 위한 소소한 일들을 해야하고 대화거리도 끄집어내어 도란도란 혹은 하하호호

나누어야 한다. 그게 아름다운 가족의 풍경이다. 모두가 꿈꾸는 가족의 판타지다. 하지만 나에게는 종종 그런 일들이 참 피곤하다. 그리고 누군가 곁에 있을수록 마음 한켠으로 나만의 공간을 더욱 갈구하게 된다. 혼자 있으면 외로워지고 누가 함께 있으면 그 또한 피곤한 일이 되니 이 노릇을 어찌할꼬. 식구들에게 나를 인정받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조금은 그리되어가고 있다고 본다. 나만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면 된다.

 

명절이다. 내일은 아마 소곡주 사러 한산에도 갔다오고 한과집에도 들러야 할 것이다. 단촐한 식구라 명절 쇠는게 별반 일될 것은 없으니

나같은 극단 개인주의자에게는 다행스런 일이다.(그래도 할일은 꾹참고 깔끔히 잘한다. 내심 비등점이 낮아서 쉽게 괴로워져서 그렇지.)

설 뒤로 이틀이나 쉬지만 아이들이 집에 오지는 못한다 한다. 논문을 마치지 않은 상태로 일을 하는 중인 큰애는 논문이 늘 목구멍에 걸린 가시라서 마음 다잡고 봄방학 동안 웬만큼 마무리 지을 모양이다. 작은애는 명절 끝나자마자 인턴을 나간다고 한다. 처음 일다운 일을 나가는 만큼 마음의 준비가 많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내가 아이들 일정에 맞추어줘야 할 것 같다. 명절쇠고 오는 길에 서울에서 아이들하고 영화나 한편 같이 보며 조금이나마 함께 시간 보내고 내려와야겠다. 아이들이 커놓으니 아이들 보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렇게 점점 저희들 삶이 나로부터 분리되어 가는거다.

 

아무 극장에서 하지않는 <<자객 섭은낭>>을 아트나인에서 보려는데 기대감 만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