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을 날로 보려는 염치 없는 결심을 하고 무주리조트에 곤돌라 타러 왔습니다.
일찍 오려고 전날 밤에 결심에 다짐을 하였건만 누구와 기약한 시간이 없으니 늘어져서
막상 도착해 왕복 일만 사천원에 표를 끊어보니 5056번입니다.
헐, 입니다. 내 앞에 이미 삼천 몇백명이 곤돌라 타고 올라갔고 천 수백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좋은 구경하려면 기다리는 정성 쯤은 갖추야겠거니 차한잔 마시면서 하염없이 앉아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아래는 단풍이 든 듯 만 듯 한데 산 중턱부터 정상까지는 그야말로 깔끔하게 잎이 져서 앙상한 가지 뿐입니다.
올핸 가물어서 잎들이 일찍 생을 마감했다는군요.
한 시간 반 쯤 기다려서 마침내 정상에 올랐습니다.
향적봉에는 이제껏 다섯 번을 올랐는데, 산악인이라 생각하지 않으므로 반은 늘 곤돌라를 탔습니다.
걸어올라와 곤돌라 타고 내려간다든가 곤돌라 타고 올라와 걸어 내려간다든가.
원래 산악인이 아니므로 산악인의 자존심 따위는 없지만, 이번처럼 곤돌라 타고 올라 곤돌라 타고 내려가려니 좀
서운하기는 합니다. 백련사가 궁금하기도 한데 말입니다.
그래도 발목 상하면 노후가 내내 고생일 것이므로 무리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단풍을 보러 왔었지만 지조없이 마음 바꾸는 거야 내 주특기이므로 흔쾌하게 단풍 대신에 모처럼 원없이 청한 하늘과
시린 공기를 누리기로 합니다.
산을 잘 안다녀 산사정이 어떤지 감을 잡지 못해 추위에 좀 떨었습니다. 남들은 모두 패딩입었는데 나는 비상용 플리스 자켓으로
버티며 겨울산에 갈 때는 좀 넘치게 대비해야 함을 다시 깨우쳤습니다.
내려갈 때 역시 꽤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걸어내려 갔으면 백련사에 닿았겠구나 싶을 때 쯤 곤돌라를 탈 수 있었읍니다.
이제 겨울에 눈꽃 보러 와야겠습니다. 얼마나 친절한 덕유산인지요. 다른 산 갔으면 눈꽃 한 번 보려면 혹독한 추위를 감수해야 하는데
이곳은 가볍게 맘만 먹으면 되니까요. 집에서 한 시간 반.
해프닝이라면 해프닝. 오다보니 플래카드에 허영만 식객에 나왔던 어죽집이 있대서 찾아가지 않았겠습니까?
무주읍내에 있더라구요. 식당 주변 보고 결단을 했어야 했는데, 에휴, 엉거주춤 들어간 식당이라는 데가,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어수선한, 정리 안된 식당 처음 보았습니다.
내 혀가 아무 어죽을 가져다주어도 분간도 못할 만큼 둔한 혀인데, 어쩌자고 꼭 이걸 먹자고 이곳을 들어섰는지.
나는 맛이 웬만만 하면 맛보다는 정갈한 곳을 우선 치는 편이라(왜냐하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더러우면 입맛 떨어지니까)
문 열어보고 사태파악을 했음에도 돌아서지 않고 엉거주춤 엉덩이 붙인 것은 근래 들어 가장 우유부단하고 멍청한 행동으로
기록하기로 하였습니다. 심지어 비위 다스려가며 뜨악하게 어죽 뜨는데 다른 손님이 면전에서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 제키더란 말이지요.ㅋㅋ
간밤에 살짝 눈이 왔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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