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잡다한 생각(15.7.16)

heath1202 2015. 7. 16. 15:46

어제는 한 시간 넘게 걸어서 슈퍼를 갔다.

긴요한 물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걸을 명분을 만들어야 해서 슈퍼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손에는 강아지 간식 한 봉지와 사탕 한 봉지가 들려 있었다.

가능한 한 정직하게 길을 갔다.

절대 지름길은 가지 말자며 조금 돌아야 되는 횡단보도는 기꺼이 에둘러서.

걸어야 할 길이 길수록 생각할 시간이 연장될 것이므로 마음이 한층 넉넉한 기분이었다.

 

나와 사람을 가장 많이 생각했다.

이 사람은 과연 왜 그랬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이 사람을 잘 알고 있던 것일까,

그 사람은 과연 나를 귀하게 대한 것일까, 그 사람은 비겁한 것일까, 비열한 것은 아닐까

또 그들은 지금 슬플까 무감할까,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소중한 사람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나는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

지금보다 사는 게 수월해질 것인가, 그럴 리는 없을 것인가.

사람은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서 너무 생각을 좇다보면 화들짝 놀랄 만큼 발이 깊이 빠져 있게 된다.

 

또 앞으로 있을 짧은 여행들에 대해 생각했다.

올 여름엔 청령포 솔밭에 앉아 공포와 슬픔 속에 떨며 울었을 소년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려야 할까,

통영에 가 문화적 풍요를 조금 얻어 볼까, 모처럼 맛난 음식을 찾아 민어도 먹어볼까,

아니면 생전 딛는 일 없는 몸도 마음도 먼 경상도 청량산도 가고 육사를 만나볼까 하는 생각들은

시종 즐겁기만 했다.

 

메탈리카도 잠깐 생각했다.

낮에 "Nothing Else Matters"를 들으며 앞으로 진진할 시간에 기타를 배워보면 좋겠단 생각도 잠깐 했다. 동안을 바빠 음악을 듣지 못했다. 청소년 문학의 끝판왕이라 내 나름 평가하고 있는 김려령의 청소년 문학이 아닌 신작 "트렁크"를 읽었는데 Led Zeppelin이 좋으냐 Metalica가 좋으냐는 물음이 나왔다. 나한테 물어 보았다.  진짜 좋은지 여부는 중요치 않고 그들의 음악 그리고 그냥 음악을 들은 지가 참 오래 되었음의 일깨움이었다.

음악도 못 듣다니 무슨 삶이 그러냐고 물어서는 안된다. 그게 삶의 진실인 것이었다.

정말 여러 날 바삐 살았다.  그야말로 모래알만한 작은 업적들을 여럿 쌓은 한 동안이었다.

그리하여 의기양양 보람이 있었으면 오죽 좋으랴만 나란 인간은 희생과 봉사하고는 태생적으로 절연한 사람인 모양이다.

종국에 울고 싶었다.  내가 이럴려고 사는 게 아니란 말이다. 내것, 내시간을. 오롯이 나만의 것인.

감정의 붕괴위기를 인지하고 간신히 나를 추스려 처음 들은 음악이 메탈리카의 '그 밖의 것들은 중요치 않아요'였던 것이다. 니체의 기준에 따른다면 나의, 우리 중 대부분의 삶은 비참할 정도로 궁핍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Led Zeppelin은 명색이 한 때는 나의 아이돌이었는데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이렇게 변합니다의 증거가 되어 버렸구나. 옛 정을 생각해서 한 번 들어야겠다.

메탈리카는 정직하고 묵직한 사운드가 좋고 레드제플린은 로버트 플랜트의 좀 예민하고 신경증적이며 도도한 보컬이 좋다.

 

얼결에 삶이 마구 흘러간다.

아무리 살아도 도시 종잡을 수 없는 삶이다.

순간순간 유쾌해도 결국엔 이리 앉아 삶을 의심하고 있다.

나에게 모든 신을 들이밀어도 그건 소용없는 일이다.  이게, 회의가 사람의 일이고 보람이라 믿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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