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문한 책 한 꾸러미를 받았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지하생활자의 수기", "백치" 다.
주문은 슈테판 쯔바이크의 "도스토옙스키를 쓰다"에서 발단되었다.
다른 책 때문에 슈테판 쯔바이크의 작품 목록을 훑다가 대뜸 밀린 숙제 생각이 난 듯 "도스토옙~"를 함께 주문했었다.
쯔바이크를 읽다 보니 고등학교 때 읽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생각 났고 안타깝게도 제목만 생각 났고 그래서 다시 읽어야겠단
생각이 나 책을 찾아 보니 삽십 년도 전의 책이 남아 있는 것이 이상할 것이었다.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 책을 함부로 하는 것을 큰 일 나는 줄 아는 엄마 덕분에 어쩌면 본가의 어느 구석엔가 처박혀 있을 것이다.
이제 아무도 읽지 않는 세로 조판으로 말이다.
이루진 못했지만 고등학교 때 나의 꿈은 노어노문학과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어떤 계기였는지 기억은 없으나 도스토옙스키, 체홉, 고골리, 뚜르게네프, 푸시킨을 읽었으니 조금 조숙했긴 했던 모양이다.
탐욕스럽게 독서를 하던, 중학교 시절부터 내 인생에 몇 년 가장 왕성하게 지식욕구가 발현한 시기였고 미성숙한 인식력일 망정
칭찬할 만한 성실과 열정으로 독서를 하였었다.
그리고 그 후 삼십 년 동안은 문학에 대한 헌신의 기억이 없다.
그다지 성실하지 않게 그다지 열정도 없이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기른 시기다.
나의 현재의 성취에 흡족한가 생각해 볼 때 절대! 그렇지 않은 걸 보면 나는 잘못 살았음에 분명하다.
내 부족한 재주가 다른 일에 쓰였을 때 과연 어떤 성취를 이루어 내었을까 생각해 볼 때 아무런 확신이 없음에도 그러하다.
물론 내 삶에 과오가 있다면 당연히 책임은 나에 있다. 나의 나태, 무책임, 안이한 판단, 자기연민, 부족한 투지, 책임전가.......
그리고, 아주 늦은 지금, 새삼 잊거나 놓친 일들에 대한 회한으로 희미한 옛사랑을 돌이키려는 듯 열에 들뜬 것이 조금은 민망하다.
그렇지만 나 자신은 좀 더 행복해질 것 같다.
아래의 책은 올해 내가 꼭 읽어내고 싶은 책이다.
가당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그야말로 짜투리 시간 내어 독서를 해야 하는데다
눈도 어두운데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한 편만 해도 깨알 같은 포인트로 천칠백페이지다.
그렇지만 다짐도 하고 격려도 하며 이루어낼 일이다.
도스토옙스키의 광기의 인간군상 틈에서 내 정신력이 잘 견뎌내려나, 또 잃었던 광기를 조금 회복하게 되려나.
혹시나 도스토옙스키의 책이 있나 해서 여러 해 잊고 지냈던 다락방에 올라가 책꽂이를 보니 먼지 앉은 "악령"과 카의 "도스토옙스키 평전"이 있어 뽑아 왔다. 보니 루신평전도 있고 문학사 책들도 여러 권 있다. 출판계를 위해 읽지 않는 책일 망정 좀 사는 편이지만, 잊혀졌던 책들을 보니 그것들을 되살리는 것이 급선무이겠다 싶다. 잊고 있었던 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루신 작품집, 길모퉁이 까페, 외치는 소리, 미국문학사, 영문학사, 영시개론, 시작법, 푸른 눈, 바다의 침묵, 보이지 않는 인간....... 그래, 기다리라. 내가 돌아간다. 오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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