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내가 밥(rice가 포함된 끼니. 밥과 반찬을 함께 먹는 끼니)을 먹은 게 네끼다.
두 끼는 집에서, 두 끼는 밖에서 모임 중에.
일부 동료들이 나를 공주라 한다. 부엌일 안하는 걸로만 친다면 나는 공주 맞다.
허나 참 궁상스럽고 처량한 공주이기도 하다.
나도 첫 아이 돌잔치상을 혼자 차려낼 만큼 의기충천하던 시절이 있긴 했었다.
허나 태생이 이기적인 나는 허덕이던 일상에서 늘 내것을 갈구했고, 일종의 내삶확보강박까지 미친 결과
내 삶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내 인생에서 요리시간을 극소화하자는 방침을 세웠다.
(물론 요리가 즐거움이고 보람인 분들에게는 해당 없는 얘기다)
끼니(밥)를 거르면 어지럽고 화가 난다는 사람도 있지만 고맙게도 나에게는 그런 불편한 증상이 절대 없고,
식습관 내지는 식사에 대한 사고도 아주 리버럴해서 한 공기의 밥과 서너 가지 반찬이어야 식사라는 불합리한 사고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고상한 정신세계를 위해 경계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탐식이라는 원칙을 세웠고, 더불어 잘못 받은 교육의 영향으로 배부른 돼지냐
배고픈 소크라테스냐는 이분법적 사고가 나의 이성을 거역하고 뻣속 깊이 작용하여 나는 결국 그냥 배만 고픈 돼지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그 돼지가 소크라테스가 되리라는 꿈은 가당찮다는 것을 알지만 대신에 몸이 게으름의 단맛을 알아버려 편한 굶주림을 기꺼이 선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때때로 식자재가 내 눈을 돌아가게 하는 경우가 있다.
원자재는 구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잊고 마구 사들이게 만드는 힘은 바로 초록이다. 특히 봄날의 초록.
길 가다가 노점에서 냉이 비슷한, 그러나 맛은 천양지판인 이름 모를 나물과 돌미나리, 그리고 텃밭에서 뽑은 파(절대 상품용으로 재배한 때깔이 아닌), 이
3종을 구입했다. 원자재였지만 할머니가 어찌나 깔끔히 손질을 해 놓으셨는지 티끌하나 섞이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하고 샀다.
그리고 로컬 푸드 장터가 열렸길래 들렀더니 파프리카 값이 그야말로 거저다. 과일보다 더 달콤한 파프리카 여덟 개를 만원에 샀다.
생률도 내가 좋아하는 속껍질까지 군데군데 붙은채로 한 봉다리에 오천원에 팔고 두릅도 가지도 팔아서 정신없이 사들였다.
사은품으로 준 장바구니에 가득가득 담았으니 그 풍요로운 품목을 보고 누군가는 요리 좀 하는 일등 주부인 줄 알겠다. ㅋ
집에 돌아왔더니 주문해 놓은 곤드레밥, 곰취밥이 도착해 있다.
내 솜씨는 하나도 필요 없이 탁자에 진설만 하면 된다.
돌미나리 데치고 정체불명 나물도 데치고 두릅도 데치고 가지와 파프리카는 썰고 한 접시에 몰아 담아 맛있는 달래간장에 나물밥 비비고.
임지호 아저씨 못지 않은 극자연주의 밥상이 되었다.
누가 이렇게 차려준다면 기꺼이 탐식의 죄를 저지를 용의가 있는데, 쩝.
결론적으로, 탐식의 소질은 농후하나 여전히 나는 게을러서, 즉 시간과 딜을 함에 시간을 택할 것이므로 일년에 한 두번 봄날의 이벤트로 만족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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