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가난한 친구 목록(15.02.23)

heath1202 2015. 2. 24. 00:34

유난히 심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낮에 아이하고 좀 왁자하게 보낸 데다가 앞집 사람들도 집을 비운, 말하자면 내집 반경 사,오백미터 이내에 사람이 없고 그것이 피부가 싸하도록 실감되는 탓이다.

구름이조차 낮동안 혼자 지낸 탓인지 저녁에 나와 상봉해서는 흥분해 과한 애정행각을 해대더니 일찌감치 골아 떨어져 버리고 텔레비전도 오늘은 소음이다. 

모처럼의 서울행으로 몸은 나른하게 풀려 있는데 좀체로 잠은 오지 않아 핸드폰을 가지고 놀다가 문득 카톡에 '친구'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이젠 친구라고 하기에 좀 무색한, 혹은 어쩌자고 친구라고 이름을 올렸을까 싶은 이름들을 걸러내기 시작했다. 

일년 동안, 이년 동안, 혹은 삼년 동안 한번도 톡이 없던 이름들이 참 많기도 하다.

연락이 없음에도 지우기엔  좀 안타까운 이름도 있었지만, 앞으로도 달라지는 건 없으리라 냉정해지기로 하였더니 스무명 넘는 이름이 목록에서 사라졌다. (숨김 목록에서 부활할 날이 있기를)

별거 아닌 숫자라 할 이도 있겠지만 교우 폭이 좁고 친구 추가에 인색해 친구 목록이 몇 뼘 안 되는 나로선 꽤 큰 숫자다.

비즈니스의 방편이다 생각하면 간단한 것을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게 아니냐 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한편 목록에 연연할 때 내 마음에 일말의 구차함은 없는지 생각해 보면서 정리에 좀 더 단호해 지기로 하였다.

앞으로도 나의 사교 생활에 변함은 없을 것이고 목록 관리에 이런 결벽이라면 나의 친구 목록은 히키코모리의 가련함을 연상케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럴 망정 무의미해진 관계에 친구의 이름을 부여하기는 싫고 아주 간결하게 나의 삶을 정리해 가는 것도 의미없는 일은 아닐 것이라 믿으며

조금 허전해진 마음을 격려한다.

나는 꽤 헌신도 잘하는 사람이다. 순정을 바쳐 지켜야 할 사람은 잘 지켜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