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이별에 대한 예의 없이(14.12.20)

heath1202 2014. 12. 20. 00:24

엄마한테 참 고맙게 해주던 이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6개월 전 암 선고를 받았었고

진즉에 우리는 모두 체념을 했는데 그와 그의 아내만 승률 제로의 게임을 지난하게 이어갔다.

진정 이기리라 믿었음에 틀림 없는게 정작 우리는 절망스런 얼굴 대할 일이 난감했는데

그는 의기양양하게 눈을 빛내며 암을 이긴 사례들을 무용담처럼 들려주었었다.

그 때 나는 그가, 아, 지쳐요. 제발 데려가 주세요, 기도하는 날이 올까봐 진정 겁이 났었다.

 

그가 매장된  오늘 무척 날이 궂었다.  전날 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나는 그의 죽음을 오늘 아침에야 알았고 휴가를 내지 않은 채 일을 하였고

한편으론 슬그머니 그게 다행이었다.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오니 말이다.

하루 내내 그를 생각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주 잠깐 잠깐의 생각 사이로 그는

속속이 젖은 구덩이로 들어갔고 생경스레 큼지막한 봉분도 생겼다.

완벽하게 이별할 방법이 쉽지는 않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는 비가 와서 귀찮았고,

저승으로 건너가는 그를 배웅하지 않았고, 조금 더 흐뭇하게 그를 보내지 못했다.

내내 내가 부끄럽고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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