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시인의 시집을 샀다
널리 알려지기 전 10년의 시들이다.
소설책보다 두꺼운 시집에 우선 압도되었다.
초반 시들의 사적이다 싶은 날감정과 상징들이
김기덕의 영화를 보듯 불편하고 때론 불쾌하기조차 했다.
내가 알던 그의 시가 아니었다.
철석같은 나의 믿음이 배반당하는 기분이었다.
인내가 거의 바닥이 드러날 때쯤
책의 뒷 쪽 페이지, 내가 그를 알던 시점에서 한발이라도
가까운 쪽부터 읽기 시작했다.
시적 성취를 떠나 역시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앞페이지 쪽에서 뒷페이지로 가는 동안 진화를 해왔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감히 말하지는 못하겠으나
한 인간이 담기에는 가히 폭발적인 용량의 감정이다.
시를 쓰지 않았다면 터져 죽었으리라 싶을 만큼.
시를 흉내내는 사람들이 하게 되는 고심의 과정이
그에게는 전혀 필요치 않아 보였다.
가슴에 절로 용솟움치는 그 말들을 손으로 옮겨 쓰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인인 것이 맞았다.
하나, 조금 서운한 시인이었다. 너무 말이 많았다.
그는 시인이니 감정의 정제과정을 알아야 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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