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이런 날이 왔다(14.11.26)

heath1202 2014. 11. 26. 00:35

 

첫교시에 수업이 없음에도 휴대폰, 도로시아 랭의 사진집, 시집 한권,

8온스 커피 한잔, 그리고 카메라를 꾸려 영어실로 올라간다.

안녕, 날 찾지마, 앞의 동료에게 농을 던지고 티나게 기쁜 얼굴로 말이다.

우선,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이 구석진 방에 환히 불을 밝히고

아늑해서 아이들이 졸릴 만큼 살짝 난방기를 켜 놓고, 책상을 정돈하고,

칠판을 지우고 나서 자리에 앉는다.

오늘은 쇼팽이다.  발라드를 방안 가득 채우고 책을 뒤적인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은 무시로 아이들이 들락날락 하니,

홀로 있는 이 수업 비는 시간이 죽도록 행복한 나만의 시간이다.

이 홀로의 공간에 빠지고 나선 공문 처리할 때 말고는

대개는 이곳에 머물러 있다.  

 

시험이 끝나고 나니 요즘은 아이들하고도 종전을 선언한 상태다.

내가 느긋해진 탓도 있고 아이들이 여유로와 지기도 했고

또 서로에게 익숙해지기도 해서

암묵적인 평화협정을 유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

게다가 잘 따르는 녀석들도 반마다 몇 몇 생겨 나에게  힘을 보태고.

따라서 이제 나는 이 곳에서 새로운 한 해쯤 견뎌낼 수 있게 된 건가?

처음엔 다시 없게 구잡스러운 애들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사랑에 빠져 버렸다.

너희 마음을 꽤 알 것 같다.

 

묵혀 두었다가 요즘 꺼내든 랭의 사진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