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에는 세 개의 탁상 달력이 있다.
그간을 돌이켜 보면 한해가 거진 가도록 늘 한 주나 보름 쯤은 지나야 퍼뜩 정신들어 달력을 넘겨 놓곤 했다.
악착같이 시간을 움킨들 잡히는 것도 없었으니.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무에 다를소냐하는 기분이었다.
책도 안 읽고 음악도 안듣고 앞서가는 시간을 쫓기도 숨차하며 나혼자 허둥대다 시간 따위는 놓아 버린듯 했었다.
너무 지쳐 있었다. 정신력은 바닥이 나고 신경은 지푸라기 한가닥 만한 생각조차도 견디질 못했다.
헤프던 웃음도 거두어졌고 톤 높던 목소리도 가둬 버렸다.
정신 차려 보면 어느 틈에 나는 나도 모르는 어둔 굴속에 들어앉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상에서의 소소한 희망과 기대가 사라지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말투는 맥을 놓은 내 정신의 웅얼거림 같았다.
나 자신 알 수 없는 행로의 종점이 두렵기도 했다.
이 번 달엔 이틀 밖에 놓지지 않고 십일월 페이지를 폈다. 신통한 일이다.
섣불리 시간을 움켰다 말할 것은 아니다. 아주 우연히 달력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그 숫자 가득한 페이지를, 아무런 기록이 없는 숫자의 행렬에 눈물이 났다.
저 많은 날짜 하나하나가 지워져 가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더란 말인가.
삶을 추스려야 한다는 의무와 그래야 할 아직 찾아지지 않는 이유 사이에서
어찌 되었던 나는 또 근근이, 강인하게 견뎌갈 것이다.
나도 그 누구도 아닌 누구에게 강건하게 해 달라고 밑도 끝도 없는 떼를 써가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때때로 나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쌤, 왜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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