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바람도 없고 포근한 날씨다보니 문득 오십년을 맞고 보냈던 지난 봄들은 어땠는가조차 기억이 가물거린다.
못믿을 건 사람 마음일 뿐 아니라 사람의 기억과 감각도 포함된다는 것을 절감한다.
날씨도 좋고 딱히 걱정스러운 일도 없는데 마음이 마냥 상쾌하지 만은 않은 게 왜인지 모르겠다.
싸울 구실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마음 한구석 늘 심사가 뒤틀리는 느낌이다.
'모든 게 부질없음'을 주지 시키다가 문득 내가 왜 이러나 싶어 중력이 유독 강하게 작용하는 듯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에 나섰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비현실처럼 고운 꽃이 만개했다. 반성했다. 저또한 현실인 것을, 왜 나는 나의 현실에선 아름다움을 배제하려고 억지를 쓰는지를.
도로변에 이런 꽃은 참 뜬금없다 싶은데, 그래서 각성처럼 분명하게 삶을 생각해 보았다.
늦도록 동료들과 커피숖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창밖을 보니 가로등 옆 싱그럽고 연한 잎이 나좀 보라한다.
새잎이 벌써 저렇게 피었음을 정말 처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찰라를 놓지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한편 왜 사니 하는 빤한 질문이 뼈저리게 닿는 순간이었다.
가로수 위에 반달이 떠 있는 때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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