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각을 다투며 허겁지겁 출근길에 나서다가도 현관 앞에서 1초간 망설이다 끝내 되돌아서는 경우가 있다.
울애기와의 작별의식을 생략했다거나 간소하게 했을 때.
가끔 너무 바쁠 땐 말만으로 작별을 할 때가 있다.
"아줌마 다녀올께, 잘 놀고 있어~."
하지만 끝내는 되돌아와 가슴에 꼬옥 안고 머리를 열번 쯤 쓰다듬어 주고야 만다.
솔직히 울애기는 어찌된 일인지 4년이 다 되어도 나랑은 애착 형성이 죽어도 안되는 토끼다.
머리가 나빠선지 나를 알아보는 기색도 없고 나랑 먼저 놀아보자고 하는 적도 없고
그저 유일하게 내 손길을 받아들이는 때는 밥줄때와 제 머리 쓰다듬어 줄때 뿐이다.
퇴근하고 현관문 열며 늘하는 다정한 첫인사 "애기야, 아줌마 왔어요~."와 함께 애기한테 가면 요 녀석은 일단 도망치기 바쁘다.
그럼에도 이렇게 오래도록 그녀석을 짝사랑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애기를 길들여보자고 공을 들이는 동안 내가 길이 들고 만 것이다.
안으면 느껴지는 포근함, 무게, 부피. 쓰다듬을 때 손바닥에 느껴지는 그 매끄러운 털의 결. 코를 박고 맡아보면 은은히 풍기는 초식동물의 냄새 등등
나는 애기의 모든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그 중 어느 한가지의 결핍도 다 허전하다.
클리셰처럼 되어버린 "어린 왕자"에서의 여우의 말이 아니어도 나는 이 길들여진다는, 길들인다는 말의 의미를 곰곰 생각했을 것 같다.
너무나 연약해서 눈을 휘번덕거리며 겁에 질려 있는 연약한 동물이 나를 부리고 있다.
나쯤 아랑곳 않는 애기에게 나는 쩔쩔 맨다. 그것도 기꺼이 말이다.
사랑이 고픈 남편이 탄식을 한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인간을 사랑할 때는 나도 인간이 되어 똑같이 계산하고 질시하고 분노하니 말이다.
사랑에 조건을 건다는 말이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위해서는 나도 그만한 조건 충족을 위해 애써야 겠지.
* 우리 애기는 참 경우가 바르다. 손을 내밀며 반드시 서너 번쯤 핥아준 후에 쓰다듬으라고 제 머리를 들이민다. ㅋㅋ
<안하무인 울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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