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이른 시각, 아이 데려다주러 터미널에 갔다 오는 길,
칠십 살은 훌쩍 넘어 뵈는 노파가 칭칭 싸고 종종 걸음치고 있다.
행색을 보니 평생을 고단하게 살았음이 여실하다.
안스럽다가 선거를 생각하니 한심스러운 생각이 겹친다.
선거가 사람 버려 놓는가 보다.
얼마 남지 않은 생, 요번에 뽑아준 대통령 덕 좀 제발 보라고 빌어준다.
늙어서까지 종종 걸음치는 할멈같은 인생을 보듬어 줄줄 아는 대통령이라면 나도 인정 안할 수 없지.
TV든 인터넷이든 몇 가지 뉴스는 아예 덮어두고 있는데,
얼핏 재외국민 투표에서 문후보가 앞섰다는 기사가 있다.
네 식구 자카르타까지 비행기 타고 가 기필코 투표하겠다던,
아주 똑똑하던 발리의 젊은 아저씨 생각이 난다.
과연 원대로 투표는 했는지,
그리운 조국에 환멸을 느끼진 않는지...
TV를 채널을 돌리다가 가장 짜증스러운 순간은 종편채널 지나칠 때다.
하이에나와 다름 없는 인사들이 정말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상대에 대한 조롱과 적개심을 공공연히 드러내는데
특히 지난 선거기간 동안 그 저열함은 언론이라 차마 부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종편 허가는 당연히 권력 장악과 유지를 위한 포석이었던 걸 말해 무얼하랴.
저 채널들 내 사랑 TV에서 사뿐히 거두어낼 방법 없나.
열받아 TK 쪽으론 발길도 안하고 그 쪽 사람들에겐 말도 안 붙이겠노라,
말하자면 유치하나마 나름의 'silent treatment'를 하는건데
오늘은 온갖 뉴스 다 패스하고 코미디 채널을 보고 있는데,
내가 젤 좋아하는 "TV 동물농장"을 두 편이나 해 원없이 흐뭇하게 웃어주려 했는데,
웬걸, 제보한 곳들이 자꾸 그쪽 지역이다.
재미가 갑자기 뚝 떨어지고 제보자들을 뜨악하게 봐야하는 이 몹쓸 지역주의.
이기분 한동안 갈텐데 어찌하리.
그러고 보니 지난 일년 그 쪽엔 한번도 안갔는데,
단순히 거리탓만은 아닌, 잠재적인 혐오가 작용한 건 아닌지.
.........
온갖 아름다운 말은 다 동원되었다만
떡고물, 콩고물 바라고 몰려든 떨거지들이
순순히 주는대로 감지덕지 할 건지는 두고 볼일이다.
제각기 한 몫들 거들었다고 공치사하고 들면...
맘 같아선 한 오년, 인도네시아 한 구석 작은 섬에 콕 처박혀 있다가 왔으면 좋겠다만
할 말은 아니고, 심정은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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