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생각 많은 오늘 밤(12.11.08)

heath1202 2012. 11. 9. 00:29

1.

운동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추돌 접촉사고 였는데 uv종인 피해차량은 범퍼만 상했는데 

가해 차량은 문짝까지 틀어질 정도로 후드까지 먹어 버렸다.

가해차량 옆에 예닐 곱살 쯤 되어 뵈는 아이가 황망한 얼굴로 서있고

후줄근한 행색의,아이의 엄마인 듯한 운전자는 사지가 축 늘어진 채 넋을 놓아버렸는데,

사고를 친 차라는 게 십여년은 족히 넘은, 세월에 하도 삭아 툭툭 치면 조각조각 부서져 버릴 것 같아

갑자기 "왜 이렇게 삶이 개떡같은 거냐"고 내가 대신 울컥해지는 거였다.

구경꾼들 모두가 삶의 신산함을 오스스 느끼는 듯 했다.

아이 엄마는 어쩌면 뼈가 한번은 해체되었을 텐데 병원에 며칠 누울 형편이나 될런지.

 

2.

운동하고 오는 길에 안개가 옅게 끼어 있는데

갑자기 내가 가는 길이 낯설었다.

4셋트를 접전을 하느라 한시간은 족히 뛰고 기진한 탓이지 하는데도

갑자기 기억이 사라지는 듯한 공포가 엄습한다.

치매라는 게 이런 걸까.

모든 것이 낯설어 지는 것.

길이라고는 고작 남북, 동서 서너 개 뿐인 이 작은 읍내에서

나는 늘 다니던 길이 어땠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 거였다.

 

3.

오늘은 좀 집을 조금 치워볼까 생각했다.

여기 저기 툭툭 걸쳐 놓은 옷가지와

싱크대에 던져둔 컵 두어 개와 그릇 몇 개,

그리고 탁자 위에 쌓아 둔 읽지 않는 책들.

치우지 않는 것도 나의 자유라며 의식적으로 치우지 않는 때가 있는데,

그게 심해지면 결국 나의 자유를 속박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온다.

잘 챙겨 먹고 잘 치우고 잘 자는 것이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모욕이라는 유쾌한 생각을,

그 치기어린 생각을 이제 버릴 때도 되었건만 아까워서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다.

때 없이 아무거나 먹고, 아무렇게나 어질르고, 끝끝내 잠과 겨루며 오래도록 살았으면 한다.

.

.

.

주말이면 식구가 꾸물꾸물 생기고 나의 자유는 조금 포기를 한다.

그 때는 나는 조금은 나만의 내가 아니므로.

그렇긴 하되, 여전히 나의 행복의 근원은 희생이 아니라 내것을 웅키려는 탐욕이다.

나는 그만한 정신단계의 사람이다.

라오스의 코끼리보다도 한참 낮은 수행 단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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