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늘 그곳에 있었다.
눈비 올 때 말고는 열번에 아홉 번은 어기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나는 그가 누군가, 무언가를 기다린다고 차마 생각할 수 없다.
그리도 긴 기다림으로는 그 어느 누구도 견딜 수 없을 테니.
아주 오래 전부터, 오륙년은 족하게 그곳에 있었다 한다.
나는 왜 그를 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사람을 대하는데 무심하지만 관찰에는 집요한 나인데.
하루 두 어번 늘 그 앞을 지났으면서도
그를 전봇대나 꽃도 피우지 못하는 벛나무 쯤으로 여겼던가 보다.
오늘 아침 여덟시 사십분, 오후 네시 오십오분 쯤에
그는 하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늘 하루도 대부분을 무미한 풍경의 한 조각으로 있었을 것이다.
그곳을 그의 세상의 끝, 종착점이라 여기고 있는 양.
아무것도,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도 그는 아주 오래 그곳에 있을 수 있나 보다.
정말 단 한 번 그가 길을 걷는 걸 어느 아침에 본적이 있다.
몸을 한 쪽으로 기울인채 앙상한 다리로 겅정겅정 거침없는 걸음이었다.
다시 못 볼까 염려를 하였으나
길은 돌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던지
오후엔 어김없이 그곳에 있었다.
떠나지 못하는 나와 마찬가지로.
한적한 국도변 전봇대 밑에 오늘도 그는 정물처럼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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