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마치고 이삼일 정신줄 놓은 사람처럼 보내다가, 오늘은 근무라 책상에 앉았다.
보름 넘게 비었던 자리가 마치 어제 앉았던 양 변한 게 없다.
나의 부재 동안 있을 일에 대비해 붙여 놓았던 포스트잇은 쓸 일이 없었으니 참 안녕한 시간이었다 하겠다. 고마운 일.
더위를 먹었는지 냉방병에 걸린 건지 내리 사흘 두통에 시달리고 있어 몇자 끄적이는 것조차 귀찮고
밀린 운동을 해야겠는데 골이 쏠려 두통약을 먹어가며 운동하고 있다.
머리만 맑으면 노래라도 할 텐데, 나의 과묵은 이 두통 때문인게 분명하다.
내 블로그가 참 낯설다.
'얜 누구지?' 하는 기분이다.
사소한 두통 하나로 거리두기를 하는 모양이다.
상봉에 흥분하기에는 나는 좀 힘들다...
.......
오랜 만에 돌아온 집은 대체로 안녕했다.
첫째 전원 차단을 가장 걱정했으나 그런 일이 없었고, 마당에 무성한 잡초는 내가 있었어도 그랬을 터이니 별일 아니고,
두 마리 강아지는 그지 꼴을 하고 있는 거 말고는(특히 열 두세살 먹은 노견 짱똘이는 늘 눈물 콧물 투성이라 보름사이에 그야말로 목불인견)
건강해 보이고, 마당에는 우리 개한테 잡힐 만큼 멍청한 두마리 쥐의 시신(뒤로 넘어갈 뻔)이 있었으나 남편이 빛의 속도로 해결했고,
앞집애 양도해 두었던 텃밭은 수확물이 너무 시시해서 그랬는지 거두지를 않아
오이는 여나무개가 노각이 되어 있고, 나있는 동안에는 잘 열리지도 않던 가지가 여러개나 땅에 끌리고 있고
토마토는 부지기수로 바닥에 빨갛게 쏟아지고 자빠지고(아까워서리...사흘 내내 토마토주스만 먹었다는...),
콩은 고라니가 다 잘라먹어 수확은 포기했고, 고구마 입은 누가 따먹었는지 줄기만 남아있어 수확에 영 괜찮은지 좀 염려도 되고
옥수수는 한 냄비 쪄 먹었는데, ㅎㅎ 한자루가 반뼘짜리 우스운 꼴이라 한 댓자루 먹어야 옥수수 좀 먹었네 할 만한...
암튼 이제 집에 곰팡내도 가셨고 이제 생활모드를 바꾸어 서서히 근무적응훈련을 해야할 것이다.
빨리 두통이 가셨으면. 콧노래를 불러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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