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날이 점점 적어져 간다는 생각이 한번 들고 나니 좀체 떨쳐내질 못하겠다.
요즈음 일상의 틈틈 그 생각이 끼어든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가 더 슬픈가 보다. 떠나는 이의 슬픔까지 안기 때문에.
엄마, 엄마, 혼자 발음을 해보면 엄마가 자꾸 목에 걸린다.
이제 팔십을 바라보니, 아무리 건강한들 죽음에 머잖은 나이다.
요즘은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 죽음이 관념이 아니라 아픈 실체로 다가온다.
어제 엄마한테 전화를 했더니, 아이들 안부를 물으며 참 보고 싶다고, 애들 못잊어 어떻게 죽을 지 모르겠다 한다. 너털웃음을 웃으며.
엄마한테 죽음은 오로지 사랑하는 자식 손주들과의 이별의 의미인 것 같은데, 요즘은 이별의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 말을 자주 한다.
엄마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위로보다는 짜증을 먼저 내지만 이제 나도 조금씩 그 감정을 깨우쳐 가고 있다.
생각만 해도 싸하고 먹먹하게 밀려올 엄마의 너털웃음 아래에 깔린 그 간절한 그리움을.
어쩌다 전화를 하면(살갑지 않은 성격이라 그렇게 마음 써 가면서도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다) 한 명 한 명 손주와 자식에 대한 안부를 점검하듯 묻고, 엄마의 그리움이 하도 간절해 나도 그들이 그리워진다.
나도 이제야 깨우쳐 가는 그 감정들을 어린 아이들이 알 리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조금 더 일찍 인간의 한 생에 따뜻하고 연민할 수 있기를, 그리고 할머니께 전화 한통 하기를 간절히 바라곤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날 선 성격으로 자주 주변 사람들을 아프게 했었고, 그 날을 겨누기에 가장 만만한 상대가 엄마였다.
내가 맘 놓고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엄마 뿐이었으니까. 엄마에게는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유순하고 효성깊은 이웃의 딸들과 달리 나는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애써보지 않았고 의미도 느끼지 않았다.
엄마라고 어찌 서운함과 노여움이 없었겠는가. 지금 나는 딸들의 사소한 한마디에도 자존심 상해하고 분해 하고 기어코 승복시키곤 하는데.
하지만 고맙게도 엄마는 천성이 참 너그러운 사람이어서 그 부드러움으로 나의 횡포를 다 받아 내었다.
살갑게 곁을 주지 않는 딸을 둔 엄마는 이웃의 유난한 효녀들이 부러웠을 테지만, 결코 입밖으로 그 부러움을 표현하지 않았고,
다만 딸의 유난한 예민함을 영리해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듯했다.
그 잘난 줄 알았던 딸은 세상의 경쟁에 지레 겁을 먹고 승진에도 아파트 평수에도 애써 무심한 채,
손바닥만한 이 고향 소읍이 세상에서 젤 속편한 곳이려니 여기며 주저앉아 살고 있다.
남들이 아파트 분양 정보를 꿰고, 재테크를 궁리하고, 애들 교육을 위한다고 도시로 이사를 해도
나는 게으르고 겁이 많았던 탓에 그냥 세월을 보내다보니 고향을 지킨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계산에 없던 것인데, 젤 가까이에서 엄마의 곁을 지킨 셈이 되었고,
엄마에게 잘하는 것도 없이 절로 엄마의 가장 든든한 위로가 되어 버렸다.
이제 와서 터전을 옮길 일도 없지만, 혹시 그래야 할지라도 그것이 엄마한테 얼마나 큰 공포이고 상실인지를 알기 때문에
결코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엄마가 우리와의 이별을 지레 슬퍼하듯 나도 요즘은 가끔 엄마가 떠난 후를 생각하며 지레 슬퍼할 때가 있다.
예견하고 있는 일임에도 철렁 가슴이 내려앉고 부모 잃은 어린아이인 양 막막하고 서러워진다.
'그동안 도리를 다했다'는 자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아플 것이다.
이별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생각을 해보는데, 생각은 생각일 뿐이지만...많이 아픈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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