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이웃

heath1202 2011. 11. 17. 16:18

어느 날 퇴근해보니 옆집 아주머니가 뒤란 텃밭에서 검불을 태우고 계신다.

두어달 전 집을 팔고 아들 곁으로 가신다고 하셨었다.

언제 이사하실 거냐니 텃밭의 콩을 거두고 나면 간다시더니, 이제 콩대를 태우고 계시는 거였다.

담을 넘겨다보니 잡초 한 포기 자랄 틈이 없던 말끔한 밭에 허투루 어질러진 검불 한 가닥 없이 쓸어놓은 듯 깨끗하다.

조금 늘어진들 누가 뭐란다고...

 

팔십이 넘으셨는데, 무슨 설렘이 있으실까...

힘 닿는 대로 혼자 사시길 고집했지만, 허리도 많이 아프고 이제 꼬챙이처럼 마른 가냘픈 육신을 부지하기 힘드셨던 모양이다.

늘 단정하고, 평정을 잃는 적 없었으며,  홀로 사는 터전을 먼지 한 톨 잡초 한포기 없게 닦고 가꾸며 살아오셨는데, 한 순간 기가 꺾이셨다.

 

이사 하시는 날은 근무를 하는 토요일이라 물건 하나 옮겨 드리는 시늉도 못내었다.

그 전날 적은 액수의 봉투 하나 전하는 걸로 인사를 다했다.

20년 넘는 세월, 같은 시공을 나누었었는데, 사람 관계라는게 이리도 허망한가보다.

눈물이 날 줄 알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그저 사람 하나 나는 자리가 잠시 허전할 뿐.

 

몇 년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곳이 이제 남은 생의 마지막 터전이 될 것이다.

이곳을 떠나는 심정이 어떠셨을까.  무거우셨을까, 가벼우셨을까.

새 보금자리에 희미한 희망이라도 가지셨기를.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에 담 너머로 보이는 시커먼 창문이 너무도 깊어

얼른 노란 등불이 밝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