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앞발을 조물락거리다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발.
시트콤에서 학예회처럼 하는 명성황후를 보고도 가슴이 먹먹하도록 울고,
국군의 날 기념 다큐멘타리에서 군견을 보고도 운다.
늙고 종양을 가진, 가련한 행색의 우리집 개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올 겨울을 씩씩하게 견뎌야 한다. 겨울을 이겨 새봄이 오면 다음 한해는 또 수월하게 살아질거야."
물정없이 깡총거리는 녀석을 보니 또 가슴이 뭉클하다.
요즘은 눈물의 누수가 너무 심하다. 제어가 전혀 안된다.
원래 고기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얼마전부터는 아예 생선이 아닌 고기를 먹지 않는다.
윤리적 신념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결심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먹지 않게 되었다.
한 순간에 말이다.
어느 날 그냥 갑자기 목숨이 슬펐고 그러곤 바로 구토가 나서 고기를 씹을 수가 없게 되었다.
간조차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다행인지 아직은 생선이나 멸치 따위는 먹지만, 그밖에 나와 눈을 맞추고 깜박일 수 있는 동물은 그 무엇도 먹을 수가 없다.
치료가 필요한 일일까?
혹시 내가 이상해지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지기도 한다.
감정의 촉수가 조금 둔해짐으로 살기가 더 수월해질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모든 세포를 열어 두고 싶은 것은 아마도 나의 삶이 무의미한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정점을 지나친 삶이 조금씩 무력해지고 둔감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안간힘 인지도 모르겠다.
고기를 씹지 못하는 것은 그 副작용(side effect)인지 모른다.
어떤 때는 마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손끝으로 토끼를 볼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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