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1. 요즘 들어 애기가 부쩍 보챈다. 툭하면 철창을 물고 흔들어 대는 통에 적잖이 소란스러워 그때마다 꺼내어 안아 주었더니, 그걸 파악한 것 같다고 남편이 말한다. 엊그제 운동 가지 전에 하도 고단해서 애기를 안고 잠시 누워 있었다. 내가 팔찌에 대한 (비싼 팔찌는 있지도, 하지도 않고, 가죽끈이나 에쓰닉한 느낌의 악세사리에 대한) 집착이 있는지라 그날도 팔찌를 한 채 아주 잠깐 잠이 들었었는데, 어쩌다보니 팔목이 허전하다. 기억을 믿을 수 없는 나이다 보니, 어디다 나도 모르게 빼어 놓았는게지 했다. 그런데 운동 끝나고 와 어쩌다 소파 쿠션을 들어보니 그 밑에 팔찌의 잔해가... 같이 자자니까 지는 안 자고 이렇게 야금야금 맛나게 먹어 치웠나보다. 아, 아깝다. 유일한 검은색 팔찌인데. 그러나 혼자 겁나 웃었다. 아, 사랑스러운 것. 사실 오줌 똥 문제라면 99% 가리기 때문에 꺼내어 놓아도 상관 없지만 문제는 물건 갉는 다는 것이다. 남편 모르는 비밀- 이미 소파 밑을 꽤나 갉아 놓았다. 아, 사랑스러운 놈. 이제 아가에서 아가씨라고 부르는데 암놈이 어찌나 늠름하고 막가는지...ㅋㅋ.
흔적 2. 참 안 이쁜 내발. 발등의 탄 자리와 그렇지 않은 곳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지난 여름, 북인도 라다크 고산 지대의 따가운 햇살에 바삭바삭 새카맣게 그을렸던 발등이 이제 세월에 몇 개월의 세월 속에 희석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 우리 마음의 상처도 이리 되기를.
흔적 3. 추한 발톱. 자라난 발톱 끝에 다 벗겨져가는 페디큐어가 참 흉하다. 변기에 앉아 있을 때마다 발등의 탄 자리와 함께 확인하는 발톱이다. 그냥 남겨두고, 자라는 발톱을 보고 싶었다.
흔적 4. 굳은 살이 가실 날이 없다. 매일 운동하고 걷기를 좋아하는 탓인지 발이 말쑥할 때가 없다. 손과 발이 삶의 모습을 가장 반영하는 것 같다. 분칠로 은폐 할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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