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 세제 시트가 몇 장 남지 않아 장보러 간 김에 사기로 했다. 보니 두 종류가 있었다. 로맨틱 플라워 향과 후레쉬 브리즈 향. 그런데 현재 쓰고 있는 세제의 향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데 그게 어떤 향인지를 도시 모르겠다. 들큰한 것이 아마도 로맨틱 플라워 향이거니 생각하고 일말의 의심도 없이 보라색 상자의 후레쉬 브리즈 향을 골랐다. 후레시에 산들바람이니 아주 상쾌하겠지. 집에 와 보니 세탁기 위에 보라색 상자가 있다. 절망이다. 식구가 없는 관계로 빨래에서 쉰내 나겠다 싶을 만할 때나 한 번씩 세탁기를 돌렸으니 현재 세제를 족히 석달 이상은 썼으리라 확신한다. 그런데 그 상자의 색깔의 기억이 그리도 없을 수가 있을까. 아니면 친숙한 느낌이라도 말이다.
생각해보니 사람이든 사물이든 아주 의식적이거나 인위적인 상황이 아니면 망막에 담지를 않고 있다. 보고 있으나 피상만 스치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오늘도 단 한사람하고만 눈을 맞추었다. 그나마 그것도 내 이해에 나름 절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얼굴을 들여다봐야 이해가 좀 더 원활해질 외국인이었으므로. 나에게 많은 이들은 실체가 아닌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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