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진 않지만 시집 여나무 권을 책상위에 쌓아놓고 보니 제법 키가 된다. 멀게는 20년이 다 되어가는 것부터 가깝게는 작년 것까지12권의 시집과 한권의 평론집을 샀다. 한 사이트에서 해결 못하고 이곳 저곳 다섯 군데에서 한 두권에서 예닐 곱권까지 다섯 번을 나누어 택배를 받았다. 택배비가 좀 들긴 했지만, 다섯 번을 설레었으니 그 값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책을 받을 때마다 책꽂이에 정리하지 않고 책상에 차곡차곡 쌓았다. 이제 다 온 것 같다. 서너권 덜어내고 살그머니 책에 볼을 대고 엎드려 본다. 이 책들의 용도가 불편하나 행복한 베개인 양 기뻐서 잠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리고 슬퍼한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던거냐고. 책마다 편편, 그렇게 아름다운 시들이 가득한데, 밥벌어 먹고 산다고 억울하게도, 시 한편 제대로 못 읽고 세월을 다 보냈구나.
한 때는 시의 언저리를 얼쩡대던 때가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재능있는 시인들이 많으니, 나까지 시랍시고 보태야겠다고 깝칠 생각은 애시 없었지만 시를 봐가며 적어도 딱지 앉은 가슴으로 살지는 말자고 했었다. 그러던 것이 돌아보니 어느 면으로 '너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삶을 꽤나 분주한 척 살았더란 말이다.
이제라도 가슴을 칠 수 있으면 다행이다 할 것인가. 이제라도 삶이 조금이라도 다를 수 있을 것인가. 설움을 잊은지 오래인 삶으로 목이 마르다. 책상 정리 따위는 하지 말자. 시를 읽을 때까지 베기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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