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무작정 따라가본 길(10.07.11)

heath1202 2010. 7. 13. 01:35

     아직도 날이 들지 않았는데, 나의 황금같은 휴일을 무력하게 고꾸라져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하여 우중산책이라도 좋으니 하고 길을 나섰다.  이미 토요일부터 충분히 널부러져 있던 터라, 더 이상 퍼져 있다가는 아직은 잘 다독이고 있는 잠재된 짜증이 슬슬 비집고 올라와 얼마남지 않은 휴일을 망칠 터였다.  먼저 칠갑산 쪽으로 가려다 도중에 보령댐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성하의 녹음이 징그럽도록 짙어가는 산들을 보며 달려 늘처럼 통나무 휴게소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고 보령댐 주위를 돌다가, 어디로 갈꼬하니... 외산에 와서 갑자기 만수산 쪽으로 가다가 에라, 청양으로 가보자 하고 그냥 달린게 옛날 금광으로 흥청망청 했다던 남양면이란 곳.  거기서 부여 쪽으로 다시 방향을 돌려 세이재에 가서 맛있는 열무냉면 먹고 파전도 먹고, 무엇보다도 평생 본 것보다 더 오래도록 무지개도 보았으니, 이만하면 참 호사한 오후다.

 

 

 언뜻언뜻 푸른 하늘이 반갑게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보령댐 주변을 달린다.

  

 

  

왼편으로 보령호를 끼고 달린다. 

 

 

  

보령댐이 생기면서 , 저 아래 마을은 수몰이 되었다.  마을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아 있으리라.  검은 흙 위로 곧게 뻗은 것이 옛날 길이란다.  저렇게 뻗어가다 깊은 물가로 가면 덧없이 사라지고 없다.  물이 불면 잠기고 물이 줄면 모습을 드러내는, 생각이 많이 들게하는 길. 

 

이렇게 길은 물속으로 사라져, 이길을 따라가다간 이렇게 황망해 지리라.

 

 

 

 

참 한적한 길.

 

 

여기가 남양면소재지. 농촌 지역은 다 이렇다. 한산한 마을 대신, 구름의 조화가 참 현란하구나.

 

 

 

비온 뒤, 들판도 푸른 하늘도 참 곱다.  이렇게 청량한 여름날도 다 있구나. 달리는 차안에서 마구 찍어도 들판이 하도 아름다우니 그냥 그림이 되어버린다.

 

 

 

 

 

 

 

하루하루가 무척 바쁜 요즘이다. 

손따로 입따로 머리따로, 동시다발로 제각각 분주하다. 

기진해서 퇴근길이 즐거운 지 감각조차 없다.

 

티비에서 보니까, 이태리 어느 어부 집안의 사람들은 시력이 6,0이란다. 

방송용 첨단 망원 렌즈가 보지 못하는 것도 다 본단다.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바다의 푸른색을 많이 보는 덕분이 아닌가 한단다.

푸른 초원을 많이 보는 몽골 사람들도 눈이 좋다지.

 

벌써 노안으로 작은 글씨의 매뉴얼을 읽지 못한다.  사전도 잘 못읽는다.

내 마음의 눈도 아마 이렇게 흐려 있겠지.

어쩌면 눈을 비비는 것조차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름 날 이 순정의 녹색들판을 보노라면 어느결엔가

우리 마음에 괜찮다고, 다 잘 될거라고 푸르른 속삭임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