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시골 사람이 예술의 전당에 갈라치면 남부터미널로부터 좀 걸어 육교 하나를 건너야 한다.
육교를 건넌 다음에 일부러 나즈막한 숲길을 조금 걸어보면 더욱 좋다.
자코메티 전을 보러 간 때는 절정을 지난 벚꽃이 분분 지고 왕벚꽃은 그 탐스럽고 흐뭇한 꽃을 보기엔 한 주 쯤 기다려야 할 즈음이었다.
꽃도 좋지만 신록이 또 절정인 때라 숲길을 좀 거닐다가 나무 밑에 자리 잡고 지는 꽃잎을 보며 준비해간 김밥으로 요기를 하였다.
봄날 잠깐의 점심 시간을 거니는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거니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 웃는 사람, 그윽히 생각에 잠긴 사람, 혼자인 사람, 무리져 왁자한 사람, 둘이 정다운 사람 제 각각이기도 하지만 하나로
행복해 보인다. 고작 몇 걸음 밖일 뿐인 현실로부터 분리된 가상의 시간과 공간 같아 보인다.
휴대폰에 쌓여가는 사진은 짐이었다.
아무리 여유 있어도 생활은 추억보다 바빠서 옛사진을 곱씹을 여유는 없고 나중을 기약하며 급히 붙잡은 시간들은 다시는 소환되지 못한채
켜켜이 쌓여 간다.
내 휴대폰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갤러리를 열면 정리되지 못한 채 점점 쌓여가는 무수한 사진들로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러던 참에 더 미룰 수 없는 계기가 생겼다.
두어 주 후 한 달간의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짐을 배낭에 꾸려야 할 모양이다. 짐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 과감히 카메라를 짐목록에서 빼버리고
사진은 휴대폰에만 의지할 계획이다.
휴대폰 갤러리를 여행 중에 가장 보고플 깨비와 제니 사진 몇 장만 남기고 탈탈 털어내고 여행 사진들로 광활한 여백을 메울 것이다.
사진 턴 김에 지난 봄의 몇 번의 이벤트를 블로그에 포스팅 하고 나니 비로소 안전한 아카이브에 내 추억이 저장이 된 거 같아 기분이 괜찮다.
비본질을 다 훓어낸 듯한 자코메티의 조각이 좋았다.
사진은 저작권 보호 문제로 네 작품에만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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