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루를 죽으려 사는구나
궂은 날씨 탓이었어
아침이 되었음에도 어둠이 걷히지 않았고
마음에까지 속속이 어둠이 스며
마치 영원히 그럴 것 같은 기분이었어
새날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은 아침이었어
몸을 일으킨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니
구름이의 꾹꾹이 덕에 피식 웃음으로써
그 부조리함에 움찔해서 일어났던 것 같아
삶과 죽음에 고양이 한 마리라니
운전을 해 일터로 가는데 차안에서 듣는 빗소리가
마치 쏴아쏴아 깨를 쏟아붓는 느낌이었어.
차 안에서는 빗소리에 맞서 음악이 흐르는데
그 음악은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였어
'리드미컬한 부드러움으로 가차없는 빗소리를 제압하다'
어떨 땐 음악 한 곡이 강력한 한 방,
나를 날려버릴 것도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해
꼭 그런 느낌이었어. 그 달콤함에 취해
나는 죽었소, 달콤하게 죽었으면 좋겠소 하는 기분이었지
신호를 어겼어
교차로, 어쩌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몇 미터
한 순간을 죽을 듯 살 듯 건넜어
사실 하나도 급하지 않았었어
그런데도 이렇게 전투적으로 촌각을 다투는 삶의 태도,
이제는 우리 속에 하나같이 유전자로 자리잡은 이 공격성이
맹목적인 관성으로 우리를 살게하는 미친 에너지가 아닌가 싶었어
사실 나는 염세적인 사람은 아니야
삶에 대해, 어쩌면 사는데 크게 보탬이 되지 않은 생각이 많을 뿐이야
삶에 대해 환상과 포부가 없고 다만 세상이, 삶이
웬만큼 이치에 맞게 돌아갔으면 좋겠다 할 뿐이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에 나는 많이 예민하고 많이 화가 나
근데 이 나라 돌아가는 꼴 좀 보라구
미친 듯이 자고 났더니 또 금세 새날이군
요즘은 정말 죽은 듯이 자고 자고 나면 울고 싶어져
우울해서 자는 것이 아니고 자고나니 우울한 건데
아마 나의 시간 강박 탓이겠지
늘 부족한 시간
삶을 오래오래,
하품이 날 만큼 지루하게 생각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암튼 자고 나니 새벽이고, 그것도 한 대통령이 죽은 날이로군
그 딸은 오늘 감회가 남다르겠군
'삶의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40일 넘게 타오른 촛불혁명 '숨은 영웅들'(출처: 한국일보) (0) | 2016.12.12 |
---|---|
비 내리는 가을밤(16.11.18) (0) | 2016.11.22 |
벗들과의 가을 번개팅-세종(16.10.22) (0) | 2016.10.23 |
말이 없는 이유(16.10.21) (0) | 2016.10.21 |
참 특별한 생일 파티(16.10.16) (0) | 2016.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