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내가 아는 여인(16.7.21)

heath1202 2016. 7. 21. 13:22

내 자기연민이 가관이다 싶은 때

나는 비장의 무기로 한 여인을 떠올린다

내가 아는 여인 하나는 아마도 지금 야근 중

지금 시각은 아홉 시 반이다

그녀는 이쁜 스물넷에 남자에게 버려졌고

남자는 아이를 하나 남겨두고 갔다 

사춘기가 더딘 그 아이를 보면

사람들은 쯧쯔 혀를 차서

그녀는 아주 속이 상한다

아이는 그녀의 가장 확실한 정체성

그 정체가 그리도 가련하다니 참을 수 없다


그녀의 아이는 혼자서도 잘 논다

적군이 없어도 총싸움을 하고

있지도 않는 적과 협상도 한다

반찬 투정 모르고 혼자 먹고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게임을 한다

저혼자도 겁내지 않고 잘 자고

잠든 아이를 쓸며

일이 늦은 그녀는 가끔 운다

아이는 이제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저혼자 말한다

저혼자대로 생각하고

저혼자대로 행동하며

저 혼자 생각으로 떼를 쓰며

바닥에 뒹군다

뒹굴다 멈춰선 가끔 하늘도 본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아이의 아득한 시선을

내게 당기려 애를 쓰다가

나는 털썩 아이 곁에 주저앉아

아이의 마음이 헤매고 있는

끝간 데 없이 머나먼 곳을 함께 보고 싶다


엄마라도 어쩔 수 없다

엄마라도 먹어야 살고

아이를 먹이기 위해 아이를 혼자 두어야 한다

아무리 조금만 먹어도 먹어야 한다 

그녀의 나이가 이제 고작 서른 일곱이라 해서

노는 일이 먹는 일을 앞 설 수는 없다

아무리 조금 먹어도 먹은 다음에 놀아야 한다

삶의 덫에 제대로 걸려버린 한 여인과

그 곁에서 비열하고 저급한 위안을 구하는 나 중에

어느 쪽이 삶에 용감한지는 누구나 안다

아마 나의 삶이 아주 조금 더 부럽겠지만

날더러 그녀처럼 장하다 하지는 않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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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자고 삶을 사는 것은 아닌 것

그녀도 깔깔대며 방자하게

삶을 웃어 주는 때가 있었으면 좋겠다